[강원 인제 '3둔4가리'] 태초의 자연 '순수함에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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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둔4가리.
강원 인제의 방태산 기슭에 기댄 산마을을 일컫는 말이다.
3둔은 산속에 숨은 3개의 평평한 둔덕이란 뜻.
방태산 남부 홍천쪽 내린천을 따라 있는 살둔(생둔), 월둔, 달둔이 그곳이다.
4가리는 북쪽 방대천 계곡의 아침가리, 적가리와 연가리, 명지가(거)리를 두고 그렇게 부른다.
가리는 밭을 일굴(耕)수 있는 작은 땅덩이가 있는 곳이란 의미.
정감록에서 "난을 피해 편히 살 수 있는 곳"이라 할 만큼 아직도 손때가 묻지 않은 오지로 꼽힌다.
맑은 물과 울창한 수목, 새벽녘 물안개와 한밤에 쏟아지는 별빛으로 한결 시원한 이들 오지를 찾아 여름나기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아침가리와 적가리골을 찾았다.
아침가리는 높은 산봉우리에 둘러싸여 아침나절에만 잠깐 비치는 햇살에 한뼘 밭을 일군다는 곳.
진동1리 진동산채앞 대방천을 건너 시작되는 계곡길을 택했다.
물막이보를 지나자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말이 금세 실감났다.
일러준대로 시선을 멀리 두고 길을 더듬지만 통 찾을수 없다.
산악회 리본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허리를 굽혀 나무사이를 비집고 나가기를 반복하지만 그때마다 길은 사라진다.
수십명은 족히 앉을수 있는 저편 마당바위를 지나 물가로 내려서 계곡을 가로지른다.
물이 조금만 불어나도 뛰어 디딜수 없는 돌이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다.
이쪽에도 길은 뚜렷하지 않다.
이리저리 헤매다 아예 계곡 한가운데로 들어선다.
물속에 발을 담그고 오르는 것이어서 어렵지만 그게 오히려 수월한 편이다.
몇번이고 포기할 생각이 들 만큼 힘든 계곡길이다.
계곡 안 위쪽을 가득 메운 아침 물안개, 시원한 물흐름, 짙푸른 원시림이 위안거리.
맑은 물에만 산다는 물고기들의 빠른 움직임이며, 깜짝 놀란 무당개구리의 뜀박질도 힘을 내게 해준다.
앞쪽에서 쏟아져 내리는 바람도 서늘하다.
때마침 젊은 남녀가 뒤따라 온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콘크리트다리를 지나 좀 더 오르면 목적지인 아침가리의 폐교.
예전에는 이곳에 30여명이 살았는데 지금은 한명뿐이다.
약초를 캐러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계곡을 돌아나와 방태산자연휴양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콘크리트포장이 되어 있어 승용차로도 오를수 있다.
방동약수에서의 약수 한모금이 먼저다.
탁 쏘는게 설탕 없는 사이다맛이다.
물을 담아가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지만 한모금 마시려는 사람이 우선이다.
올라오던 길로 계속 가면 험한 비포장길로 아침가리와 만난다.
그냥 내려와 휴양림길로 들어선다.
그 안에 적가리골이 있다.
인근 댓골과 함께 방태산의 계곡미를 자랑하는 주인공.
가을 단풍이 특히 돋보이는 곳이다.
울창한 숲이 그늘을 이룬다.
크고 작은 폭포와 물길이 싱그럽다.
마당폭포라고 부르는 2단폭포 근방의 경치가 뛰어나다.
마당바위는 넓고 평평해 드러누워 쉬기에도 안성맞춤.
6백m쯤 더 올라가면 적가리골 최고의 절경인 이폭포, 저폭포가 나온다.
이것도 폭포고 저것도 폭포라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내리꽂히는 이폭포의 물기둥을 받은 저포폭의 물줄기가 더위를 날려버린다.
인제=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