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종합상사] (上) 위상 추락..상사맨들 1년새 20% 떠나

수출입국의 첨병역할을 해온 종합상사의 위상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 밑으로 떨어지고 상사맨들의 숫자도 계속해서 줄어드는 추세다. 해외자원개발 등으로 사업다각화를 추진해보지만 여의치않다. 종합상사의 현주소와 나갈 길을 시리즈로 짚어본다. 지난 77년 럭키금성상사(현 LG상사) 공채 1기로 입사해 20년 이상 수출 일선에서 근무해온 K상무(49). 그가 입사할 당시만 해도 종합상사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직장이 아니었다. 상사맨은 대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종이었다. 미혼 여성들 사이에서도 최고 신랑감으로 꼽힐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상사맨들의 자부심과 긍지는 대단했습니다.그룹 공채로 뽑힌 신입사원 10명 중 9명이 제1지망 계열사로 상사를 지원할 정도였으니까요.현재 그룹 내에서 잘나간다는 임원 치고 종합상사를 거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K상무는 당시 종합상사의 위상을 이렇게 회고했다. 종합상사의 입지는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선 극단적인 '폐지론'까지 나오고 있다. 적어도 중개 수수료 수입을 목적으로 하는 트레이딩 중심의 종합상사는 이미 수명을 다했다는 지적이다. 84년 현대종합상사에 입사해 젊음을 불사른 L팀장의 이력이 이를 잘 보여준다. 입사 초창기 수천만달러의 수주를 따내며 주위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던 그는 런던지사에 근무했던 90년대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거대 선박시장이 형성돼 있던 런던에서 국내 작은 조선업체에서 생산하는 중소형 특수선박을 유럽 시장에 처음 내다파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던 그는 IMF 사태가 터진 직후 종합상사의 추락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이전에는 '종합상사' 명함만 들이밀면 신용장 개설 없이도 거래를 텄던 현지 업체들이 태도를 바꿔 주거래 은행의 신용장 개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나중엔 그마저도 믿을 수 없다며 영국 현지 은행에서 신용장을 개설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종합상사가 저물어가고 있다는 것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고 술회했다. "요즘엔 공공연히 종합상사는 '페이퍼 컴퍼니'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며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만감이 교차한다"고 그는 말했다. 종합상사의 위축은 최근의 각종 지표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올 상반기까지 삼성물산 현대종합상사 LG상사 등 국내 7대 종합상사의 수출실적은 3백8억5천1백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1.2% 감소했다. 총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9.1%에 그쳐 지난 90년 이후 11년 만에 처음으로 40% 아래로 떨어졌다. 종합상사의 수출 비중은 지난 90년 38.1%에서 98년 51.9%로 8년 연속 증가세를 보였지만 99년 51.2%로 감소한 뒤 지난해에는 47.2%를 기록하면서 40%대로 떨어졌다. 상사맨들의 숫자도 종합상사의 위상 저하와 더불어 크게 줄었다. '2001년도 종합상사 편람'에 따르면 국내 종합상사의 상사부문 인력은 효성이 1년 전보다 32.1% 감소한 것을 비롯해 현대종합상사가 20.9%,삼성물산이 15.7% 각각 줄었다. 전체적으로는 20% 가까이 감소했다. 종합상사 관계자는 "몇년 전부터 대부분의 종합상사들이 특정 품목에 집중된 전문상사를 표방하거나 아예 상사로선 어울리지 않는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며 "사실상 본래 의미의 종합상사는 이미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