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냄새 나는 세상'은 포근하다 .. 공선옥 신작장편 '수수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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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은 적자생존의 가치관이 지배한다.
어느곳에서나 '잘난 자들'만 판치고 부각되는 반면 '못나고 상처입은 자들'은 괄시를 받는다.
세상엔 못나고 상처입은 사람들이 더 많지만 그들이 설 자리는 점차 좁아지고 있다.
작가 공선옥(38)씨는 신작장편 '수수밭으로 오세요'(여성신문사)에서 '잘난 자들'을 떠받드는 것을 '아비마음','못난 자들'에게 던지는 연민을 '어미마음'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어미마음'이야 말로 못 배우고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사회에서 축출하지 않고 보호해 주는 원동력임을 갈파하고 있다.
이런 인식은 재혼한 부부를 축으로 계층간,부자간 갈등을 통해 깔끔한 문체로 구체화된다.
소설은 어느 비오는 날 남편 심이섭과 전남편 소생의 아들 한수가 함께 텔레비전을 보는 모습에서 이섭의 아내 강필순이 슬픔을 느끼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제는 먹고 살 걱정이 없어졌지만 그들간의 침묵은 필순의 가슴을 짓누른다.
한수는 새아버지와의 관계개선을 위해 텔레비전 앞에 앉았고 이섭은 자기 생각에 빠져 있다.
그들은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 채 눈치만 살핀다.
왜일까.
의사인 남편 이섭과 못배운 아내 필순은 소위 사회적 계층차를 극복하지 못한다.
그들의 결혼은 '초혼실패'란 동정심에서 비롯됐지 사랑 때문이 아니었다.
이섭은 필순과 소박하게 살려고 작정했지만 새가정에 적응못한 채 티벳으로 떠나고 만다.
남편을 떠나 보낸 뒤 필순은 공허감을 얼추 다스리고 나자 그와 동거할때의 불편함이 새삼 느껴진다.
예전에는 혼자 살면 무조건 슬픈 거였지만 둘이 살아도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슬픈 것이 인생이라면 그 슬픔이란 것을 친구 삼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필순에게 남겨진 것은 아이들 뿐이다.
여동생과 동거했던 남자가 맡기고 간 아이,친구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두 아이,이섭과의 사이에서 난 아이,전남편 소생의 자식 등.
필순은 이 모든 아이들을 '어미마음'으로 보듬어 안는다.
필순과 이섭 뿐 아니라 프레스기에 손을 잘린 필순의 오빠,오빠로부터 학대받는 올케와 조카들은 모두 삶에 배반당한 '못난 자들'이다.
필순과 올케는 '이 상처의 피라미드'에서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는 '어미'들이다.
피라미드 상층에 있는 이섭은 이중적인 지식인의 전형이다.
생태를 걱정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봉사하지만 정작 아내를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한다.
상층부에서 스스로 내려와서 아내와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아내를 자기식으로 끌어올리려는 방법론상의 문제 때문이다.
반면 필순에게서 '사람냄새'가 나는 것은 생명에 대한 조건없는 사랑을 내면에 품고 있는 까닭이다.
공씨는 "인간관계는 작은 어긋남으로 뒤틀린다"며 "지식인은 원론에만 집착하고 실천을 제대로 못하기에 어긋남을 유발한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