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칠레의 '한국 이미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칠레 산티아고 무역관에서 근무하는 유성룡(26)씨는 8가지 명함을 갖고 다닌다. 명함에는 KOTRA의 로고와 함께 인터웨이산업 영신산업 등 8개 한국 중소기업 이름이 각각 적혀 있다. 이민 생활 10년째인 그는 KOTRA의 현지 직원이다. 유씨가 맡고 있는 업무는 '지사화 사업'. KOTRA가 작년 7월부터 전세계 무역관을 통해 한국 중소기업들의 수출을 지원키 위해 현지에서 지사 역할을 대행해 주는 서비스다. 유씨는 칠레 바이어들을 찾아다니며 8개 중소기업의 수출담당자로 뛰고 있다. 지난달 유씨는 바이어와 6개월의 실랑이 끝에 인터웨이산업의 칠레시장 첫 수출계약을 끌어냈다. 수출규모는 2만달러로 크지 않았지만 남미의 교두보임을 자처하는 칠레시장을 뚫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수출협상이 마무리될 시점에 중국업체가 가격을 후려치면서 끼여들어 혼이 났다"는 유씨는 "중국쪽의 오퍼 가격이 너무 낮아 바이어가 망설이는 바람에 비상수단으로 '국가 이미지'를 앞세워 수출을 성사시켰다"고 은근히 자랑했다. 아직 '저가 이미지'를 갖고 있는 중국과 달리 반도체 자동차 등에서 세계적인 품질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내세운 것이 기대이상으로 먹혀든 것. 실제로 칠레에는 한국하면 '제조기술 선진국'이란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산티아고 시내를 달리는 승용차 10대중 3대는 한국차다. 칠레 중산층들이 자주 찾는 대형 유통센터들이 몰려있는 '빠르께 아라우꼬'엔 한국상품이 넘쳐난다. 엄성필 산티아고 무역관장은 "현대 삼성 LG 등이 국가 이미지를 높여 놓은 덕분에 중소기업들이 칠레 시장을 파고들기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산티아고의 한국 공관들은 올 하반기에 예정돼 있는 김대중 대통령의 방문에 대비한 준비로 분주하다. 한국 교민들과 진출기업들은 대통령 방문을 통해 한국과 칠레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이 당장 결실을 맺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남미시장에서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한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산티아고=장경영 기획부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