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시 '무릉계곡'] 물소리.바람소리...속세가 어드메뇨...


"유토피아"(Utopia)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곳, 이상향(理想鄕)을 뜻한다.


16세기 영국의 토머스 모어가 같은 제목의 책을 낸 뒤 서구인이 꿈꾸는 이상사회를 대표하는 말이 됐다.
동양에는 "무릉도원"(武陵挑源)이 있다.


토머스 모어보다 한참 앞선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복숭아꽃 만발한 별천지, 즉 속세 너머에 있는 곳이란 의미를 함축한 말이다.

이상향은 현실과의 단절을 내포하지만 꼭 그런 것 만은 아니다.


현실세계로 끌어내려 일궈 내고자 하는 의지의 확인이기도 했다.


수많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의 이름에서도 껍데기뿐일지언정 두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생각들이 있었음을 엿볼수 있다.
강원 동해의 무릉계곡이 대표적이다.


두타산(1,352m)과 청옥산(1,403m)의 높은 봉우리가 굽어 보는 깊은 계곡.


무릉도원에서 따온 이름 그대로 여름엔 짙푸른 녹음과 바위 위를 흐르는 물살로 별천지를 이루는 곳이다.
무릉반석에서 용추폭포까지 천천히 걸어 왕복 3시간 길인 트레킹코스도 어린아이까지 무리없이 완주할수 있어 만점이다.


계곡은 무릉반석으로 사람들을 맞는다.


수백명이 앉아도 넉넉하고 편평한 바위가 기분을 탁 트이게 한다.


그 위 우묵하게 패인 곳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 옆에 자리를 편 사람들의 표정도 밝다.


조선전기의 명필가 양사언의 석각과 김시습을 비롯한 수많은 옛 시인묵객의 발자취가 글씨로 남아 있다.


무릉반석 윗길 오른편으로 삼화사가 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처음 세운 사찰이라는데 재난에 의한 소실과 재건을 반복, 고찰이란 느낌은 주지 않는다.


삼층석탑(보물 1277호)과 철조노사나불좌상(보물 1292호)이 감상거리.


삼화사란 이름에는 신라의 장군 김재량을 흠모하다 장군이 전사하자 서로 네탓이라 싸우며 자결한 세 처녀귀신과 자장에 얽힌 전설이 어려 있다.


자장이 훼방을 놓던 처녀귀신들을 설법으로 감화시켜 화합시킴으로써 삼화사라 부르게 됐다는 것.


원래 절터는 인근 쌍용시멘트 자리였다.


고려태조 왕건이 이곳의 산성에서 공을 들여 삼한을 아울렀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는 설도 있다.


삼화사 가기전에 있는 금난정은 일제에 의해 손에서 책을 놓아야 했던 유생들의 한과 나라재건의 결의가 응집된 유서깊은 정자.


계곡길은 삼화사 앞으로 이어진다.


흙길과 바윗길이 교차되지만 오르막이 심하지 않아 편히 걸을수 있다.


숲이 하늘을 덮고 있어 쨍쨍한 한여름 햇살을 막아준다.


더러 걸쳐 있는 철다리 위에서가 아니라면 물소리로만 계곡을 느껴야 한다는게 작은 흠.


물이 마른 학소대, 옆으로 빠져 올라야 하는 산성12폭포, 장군바위,병풍바위 등을 지나쳐 나가면 무릉계곡의 백미인 두개의 폭포가 땀을 씻어준다.


선녀처럼 두레박을 타지 않으면 올라올수 없을 것 같이 깎아지른 듯 깊은 선녀탕 위의 쌍폭포와 용추폭포다.


쌍폭포는 바른골과 박달골에서 내려오는 물이 만나 두개로 떨어지는 폭포.


물기둥의 양과 세기가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듯하다.


요즘 한 한일합작 영화촬영이 한창이라 좀 어수선하다.


바로 위에 용추폭포가 있다.


칼로 자른 것 같은 수십미터 높이의 우묵한 검은 바위절벽과 휘둘러 내리 떨어지는 물줄기의 분위기에 입이 절로 벌어진다.


보통사람들의 무릉계곡 트레킹은 이곳이 반환점.


용추폭포 앞 바위에 누군가 기운이 느껴지는 큼직한 한자를 음각해 놓았다.


별유천지(別有天地).
온갖 계곡과 폭포를 섭렵한 사람일지라도 이곳에 들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해=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