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환경정책의 몇가지 과제..홍준형 <서울대 공법학 교수>

자동차수출업자에게는 캘리포니아주의 배기가스 규제기준을 충족하는 것이 미국시장 접근의 결정적 관건이 된다. 캘리포니아주에서 규제기준을 강화하면 미국 전체에 확산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기가스 규제기준을 강화하는 것은 대기환경의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정책이기도 하지만,관련분야 환경기술 발전을 고려한 수입규제정책의 일환인 경우도 많다. 우리의 경우 자동차 배기가스로 대기환경이 심각하게 악화된 후에야 배출허용기준이나 단속을 강화한다고 부산을 떠는 경우와 사뭇 대조되는 점이다. 이른바 '환란'에 따른 IMF 관리체제하에서 환경규제는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았다. 당장 급한 불을 꺼야 하는 판에 환경문제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다시 환경문제의 심각성이 부각되고 있다. 서울 등 대도시의 대기 질이 매년 악화돼 왔고,특히 국내 10개 월드컵 개최도시의 미세먼지 연평균 수치가 일본의 개최도시보다 2배가량 많은 것으로 나타나는 등 대기환경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 이처럼 대기환경이 악화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자동차 배기가스가 제대로 정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 가운데 주요 선진국들이 자동차 배기가스 관련 규제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고,기후변화협약에 따른 파급효과가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포드 등 미국의 자동차메이커들이 부품업체들에 ISO 14000시리즈 등 환경관련 국제인증의 획득을 요구하는 등 거래환경이 어렵게 돌아가고 있다. 한국의 환경시장은 매년 15%씩 성장해 2005년에 가면 시장가치 1백2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세계 환경시장의 규모나 성장가치는 말할 필요도 없고,중국대륙에서의 자동차보급 확대만 생각하더라도,베이징의 교통지역과 극심한 매연만 떠올리더라도 환경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무한하다. 환경시장은 넓고 환경산업의 할 일은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환경기술수준은,특히 첨단기술 부문에서는 아직 초보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위기가 기회였다면 사실 환란초기에 환경기술·산업에 대한 투자를 더욱 강화해야 했다. 뒤늦게나마 산업자원부와 환경부가 환경기술의 개발과 환경산업의 발전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다행이지만,아직도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몇가지 문제들이 있다. 첫째,환경기술의 수준과 그것이 환경산업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환경규제시스템의 설계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수출전략 차원에서의 환경기술개발은 시장접근을 위해 목표시장에서의 규제수준을 충족시키는 효과는 있지만,국내 환경여건의 개선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국내 환경개선 효과를 거두려면 R&D 프로젝트 방식의 지원정책에 머무르지 말고 환경규제기준의 설정과 집행에 환경기술의 개발을 유도 또는 의무화함으로써 환경기술의 수준을 규제정책과 연계시키는 전향적 정책이 필요하다. 둘째,환경기술 개발에 대한 정부의 지원정책에 있어 연구소와 생산시설 간의 거리를 최대한 단축해 개발된 기술이 직접 생산과정에 투입될 수 있도록,아니 생산에 직접 투입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도록 하는데 정책적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연구소장이 곧 공장장이 될 수 있는,연구원들이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동시에 학위를 받고,학위를 받고 나서 다시 생산현장에 진입하는 단절없는 연동체제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셋째,환경규제의 합리성과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어떤 규제정책이나 규제기준을 도입한 이유와 근거가 무엇이며,그 적용성과를 미리 파악하고 이를 설득시켜 나가려는 정책적 의지와 노력이 절실하다. 가령 수입자동차업체들이 차량수입에 필요한 형식승인과 관련해 불평등한 법 집행과 과도한 규제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데,그것은 우리의 환경규제 시스템이 이들을 설득하는데 필요한 합리성과 과학적 근거를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는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각종 환경규제수단들의 집행성과가 정확하게 조사·평가되지 못하고,따라서 환경정책이 학습능력을 갖추지 못하는 저간의 사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joonh@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