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노고단'] 야생화 色잔치 '天上의 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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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천은사에서 성삼재휴게소에 이르는 구불구불 오르막 길.
모퉁이를 돌면 저만치 앞서 달아나던 구름이 안개되어 차를 감싸더니 계곡 아래로 밀리며 다시 제모양을 갖춘다.
해발 8,9백m..., 이어 1천40m 고지위의 성삼재휴게소.
여기서 10년 자연휴식년제의 마감을 앞두고 탐방객에게 시험 개방되는 노고단 정상까지는 걸어야 한다.
예서부터 지리산 서쪽끝 중심 봉우리인 노고단(1천5백7m)에 닿아 있는 산책로는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하늘에 걸쳐 있는 구름길을 걷는 듯 신발을 벗어든 이들도 보인다.
산책로는 기대와 달리 밋밋하다.
너무 넓어 양옆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주지 못한다.
고분고분하게 보이는 잠자리떼와 다람쥐들이 간간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성삼재휴게소에서 50여분.
노고단 대피소에서 정상탐방 예약 확인을 하고 10분길 노고단재를 향한다.
노고단재 바닥은 수목이 없고 황토 맨살만 드러내고 있다.
왼편에는 검은 돌로 쌓아 놓은 원추형 제단이 솟아 있다.
지리산자락의 장쾌한 뻗어내림은 운무로 인해 멀리 이르지 못한다.
오른편 정상쪽은 진초록의 야생풀들로 뒤덮여 시원하다.
10년 출입통제로 되살려낸 결실.
관리사무소의 장승준씨가 정상탐방에 앞서 원래는 길상봉이라 불렀던 노고단에 얽힌 마고할미에 대한 전설, 자연휴식년제의 실시배경과 함께 당부의 말을 빼놓지 않는다.
"정해진 탐방길을 벗어나서는 안됩니다. 절대 "야호"하며 큰소리를 지르지 것도 삼가해 주세요"
이 곳의 주인인 야생풀과 곤충들이 놀라 달아날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설명.
군사시설과 외국인별장, 무분별한 행락객들로 인해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진 이곳의 식생은 다시 울창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1.3km 정상탐방로는 완만한 나무계단으로 시작된다.
주변부는 노고단재와 확연히 구분될 정도로 관목이며 야생풀로 뒤덮여 있다.
연한 홍자색과 백색의 이질풀이 앙증맞은 모습으로 탐방객을 반긴다.
자줏빛 비비추는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동자꽃과 지리터리풀도 한껏 모양새를 뽐낸다.
안개방울이 스친 푸른 잎새들은 싱싱하게 원기를 자랑한다.
진초록 풀밭 곳곳에 노랑색 방점을 찍는 원추리가 정상쪽에 이르러 군락을 이룬다.
이곳에서는 산자락 아래쪽과는 사뭇 다르게 시원한 맞바람을 즐긴다.
껑충하게 솟아오른 범의꼬리도 한창이다.
이들 야생화가 벌이는 색잔치가 화려하면서도 수수하다.
전망대에서의 조망은 가슴을 후련하게 한다.
바람이 불면 간간이 드러나는 먼 남쪽 아래의 섬진강 줄기는 한 의 수채화다.
운해를 뚫고 솟아 이어져 있는 봉우리들도 장관이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했는데도 야생화들이 돌아오지 않았어요. 5~6년 전부터 할수 없이 손을 댔지요. 맨땅이 드러나 쓸려 내려간 돌이며 모래, 흙을 채우고 흙과 씨앗, 비료 등을 섞은 식생자루도 쌓았어요. 이젠 멀리서 찾아온 야생화들도 뿌리를 내려 식생이 늘어났습니다"
사실 이곳을 처음 찾아 10년 전의 모습을 알 수 없는 탐방객은 10년세월동안 얼마나 변화했는지 느낄수 없다.
그러나 아는 사람들은 놀랍다는 반응.
서울에서 일부러 내려와 1시간 탐방을 마친 한 여성은 "붉게 드러난 땅 밖에 없었던 이곳이 이렇게 달라졌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는 가을께 또한번 이곳을 탐방할 계획.
"가을의 노고단 정상은 말 그대로 천상의 화원을 이룰것 같네요. 높은 하늘과 웅장한 지리산 연봉, 내려다 보이는 섬진강변 풍광도 기대되지 않으세요?"
구례=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