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장경제 체제인가] (7) '규제위주형 정책'

"제발 좀 내버려 뒀으면 좋겠어요" 손길승 SK 회장은 최근 제주도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세미나에서 "신경제의 주체는 창의적인 기업과 개인이므로 정부는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기본 틀을 만드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한 최고경영자는 "정부의 시시콜콜한 기업 경영구조에 대한 간섭으로 급변하는 시장 변화에 대처하기 보다는 정부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기업들의 창의성이 강조되고 있는 시기에 아날로그식 구태의연한 정책 때문에 사업을 하기 힘들다는 하소연들이다. 기대했던 성과를 얻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난 대표적인 정책으로 빅딜(대규모사업교환)을 들 수 있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 출범 초기 반도체 철도차량 항공제작 등 7개 업종에 대한 관 주도의 '빅딜'은 대표적인 정책 실패 사례"라고 평가한다. 과잉 설비를 줄이지 않은 채 독과점을 유도하다 보니 대부분 구조조정 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경쟁 촉진'과 '민간 자율'이란 시장경제 원칙만 훼손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재무구조의 획기적 개선'을 위해 마련됐던 부채비율 2백% 가이드라인도 정부 스스로 몇 번의 예외인정 조치를 취하면서 정책 실패를 자인한 꼴이 됐다. 일본 기업이 4백%이던 부채비율을 2백%로 낮추는데 10년 걸린 것을 우리 30대 대기업은 1997년말 기준 5백13%의 부채비율을 99년말 2백19%, 2000년말 1백71.2%로 줄이는 '초단기 압축 재무개선'을 이뤄냈다. 업종 구분 없이 획일적으로 부채비율 2백%를 강요받다 보니 외상 거래를 많이 하는 종합상사와 해운 항공 건설회사들이 영업에 타격을 받는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물론 경제력 집중으로 독과점 폐해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어느 정도 규제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규제의 범주가 정책 판단을 넘어 경영 판단에까지 이르는 데 문제가 있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정부 규제가 경영판단 분야에까지 확대되면서 기업 의욕이 떨어지고 시장이 왜곡되고 있다"며 △사업구조(빅딜) △재무구조(부채비율 2백%) △조직구조(비서실 해체) △지배구조(사외이사 확대) 등을 사례로 꼽았다. 그는 또 공정거래위원회가 경쟁 촉진을 통한 소비자 보호라는 본래 기능보다는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같은 대기업 규제 정책에 치중하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 놓았다. 권명중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공정거래 정책이 디지털경제 특성을 무시한 채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정부 정책이 실패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서 정책 실명제를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엄기웅 대한상의 상무는 장관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정책을 내다 보니 무리수가 나온다며 건수 위주의 규제를 성과 위주로 전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구학.손희식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