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따라잡기'] 생명공학과 미국의 선택
입력
수정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일 인간배아 복제연구에 대해 연방자금의 지원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비록 폐기된 배아에 한정하고 배아를 제공한 사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등 제한된 목적과 엄격한 조건아래 인간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한다는 것이지만 이는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제2의 생명윤리 논쟁으로까지 불릴 정도로 논란이 많았고 또 보수적인 색깔이 두드러진 공화당이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원래 공화당은 정부 연구자금의 지원기준에 대해 민주당보다 훨씬 엄격한 입장을 취해왔다.
기초연구와 국방연구 외에는 명백히 기업의 영역에 해당하는 개발연구에 당연히 개입하지 않고 다소 회색영역일 수 있는 응용연구마저도 정부의 직접적 개입을 꺼려한다.
그러나 생명공학분야 만큼은 다소 예외였다.
생명공학의 핵심적 연구기관인 국립보건원(NIH)의 연구개발(R&D)예산은 연간 1백50억달러를 넘어서고,이는 국방부문 R&D를 제외한 정부전체 R&D예산 중 40%다.
이런 추세는 공화당 민주당 정권할 것 없이 어느 쪽이건 크게 변하지 않았다.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하는 미국 생명공학 산업의 씨앗은 NIH의 막대한 연구개발과 관련 중소기업의 창출노력에서 비롯됐다.
경제적·사회적 이익이 엄청나고 기술자체가 과격할 정도로 신기술이면 응용연구에 대한 정부지원을 정당화하는 미국식 산업정책의 전형이기도 하다.
부시의 이번 결단이 다소 소극적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맥락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될 것이 있다.
제한적이나마 연구지원을 선택한 미국이나 인간배아 연구에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영국 호주 뉴질랜드에는 공통점이 분명히 있다.
의학적 연구를 위한 인간배아 줄기세포 채취에 찬성하는 여론이 바로 그것이다.
호주의 로이모건 여론조사기관이 조사한 찬성률을 보면 미국 63%,영국 62%,호주 72%,뉴질랜드 66% 등으로 나타났다.
세금을 내는 시민들의 여론과 이러한 여론의 기초가 되는 대중의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과학정책이나 산업정책의 변수가 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미국 RAND 연구소도 지적했지만 앞으로는 시민들의 기술에 대한 '수용성(acceptance)'이 신산업의 발전을 좌우할 수 있다.
이는 우리 정부도 주목해야 할 대목인 것 같다.
전문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