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패망 '秘史'] (10) '아! GM (中)'..모든 길은 자동차로

대우그룹에서는 "모든 길이 자동차로 통했다". 대우중공업을 비롯한 대부분 계열사들은 "자동차"에 말려들어가면서 망가져 갔다. 김우중 회장은 92년 GM과 결별이후 세계경영의 전면에 자동차를 앞세웠다. 화려한 글로벌 전략을 구사하기에 자동차만한 상품이 없다고 판단한 것. 자동차 투자 여력이 없었던 상태에서 결국 (주)대우와 대우중공업이 앞장설 수 밖에 없었다. 93년~97년 세계경영을 위해 동구권 회사들을 인수한 주체도 물론 (주)대우와 대우중공업이었다. 여기까지는 견딜만 했다. 세계시장 개척이라는 의미있는 일에 일익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98년 초 김 회장이 대우중공업 (주)대우, 중공업과 자동차 대표이사로 컴백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진다. 그것은 3백70개 해외법인과 1천40여개 지사를 자동차 중심으로 재편하고 전계열사로 하여금 대우자동차를 지원토록 하기 위한 포석에 다름아니었다. 역시 자금줄은 대우중공업이었다. 조선업 호황으로 상당한 수익을 내고 있던 중공업은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대우 계열사에 무려 5조원 이상을 쏟아부었다. 98년 1.4분기 동안 대우차에 1천6백60억원,통신에 1천6백억원,(주)대우에 1천4백36억원 등 모두 4천58억원을 신규 지급보증했다. 이에앞서 96년 3.4분기에는 대우차의 해외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주)대우에 8천90억원등 1조5천67억원의 우회보증도 섰다. 80년대말 경차사업에 총대를 맨 것도 중공업이었다. 99년에는 해외법인 지분을 고스란히 대우차에 상납(형식적으로는 매각)했다. 대우차에 대한 출자비율이 높아져 대우그룹의 지주회사였던 (주)대우를 제치고 자동차의 최대주주(66%)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아무리 장사가 잘 되는 우량기업이라도 이 정도 퍼주고 나면 껍데기만 남을 수 밖에 없다. 대우중공업 직원들이 그룹에대한 불만이 큰 것도 이때문이다. 대우중공업은 워크아웃에 들어간 이후 채권단에 가장 협조적이었다. 그룹이 해체된 바에는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워크아웃 이후 대우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중공업 경영진은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존전략을 맞아떨어졌다. 그룹과의 관계를 끊어버린 대우중공업은 워크아웃졸업을 앞두고 있다. 물론 대우계열사 가운데 처음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