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0.30원 급락, "달러 약세 저지개입이 관건"
입력
수정
환율이 태평양을 건너 날아온 '달러 약세'의 강한 무역풍을 타고 10원이상 급락, 5개월만에 1,270원대로 진입했다.
광복절 휴장때 급변동한 국제 외환시장의 여진이 굳건하게 지켜지던 1,280원에 대한 지지력을 붕괴시켰다.
미국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달러 약세 분위기를 짙게 만들면서 추가 하락에 대한 여지를 남겨놓고 있으나 당국의 강한 개입의지가 하락폭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1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지난 화요일보다 10.30원 내린 1,278.20원에 마감했다. 지난 3월 14일 1,277.80원에 마감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며 이달 들어 3번째 시도만에 1,270원대에 진입했다.
개장 직후 1,270원대로 급락한 환율은 개장초에 환율 변동 요인을 흡수한 뒤 오전장에서는 1,279원선, 오후에는 1,278원선을 주 무대로 했다. 장 막판 국책은행에서 종가관리성 강한 매수세가 나와 달러/엔의 하락을 반영하지 못했다. 당국의 의지가 1,280원에 아직 걸쳐있음을 보여주는 단서.
이날 개장초부터 10원이상 환율이 급락하자 재정경제부는 "환율이 특정 통화 움직임에 시장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는 시장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당분간 해외 동향을 지켜보면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해 추가 하락에 대한 강한 경계감을 드러냈다.
역외세력은 개장초 매도에 나선 뒤 매수와 매도가 엇갈리는 혼조세를 보였으며 1,280원 이상에서 매물을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체는 거래가 많지 않은 가운데 기준율보다 크게 낮은 수준으로 인해 저가 인식 매수에 나섰으며 달러 약세 추세를 반영한 매물도 조금 내놓았다.
수급상으론 수요 우위의 장세였으나 환율 하락을 저지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시중 포지션은 균형상태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 추가 하락 '충분' = 장중 오름세를 유지하던 달러/엔이 장 막판 다시 119엔대 아래로 내려서 달러/원의 추가 하락을 가늠케하고 있다. 당국의 환율 수준에 대한 인식이 관건이다.
엔화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반응도 미온적이라 달러/엔의 추가 하락에 길을 터 준 셈이 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려할만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규모 △생산성 증가 중지 등으로 달러화 강세에 대한 경고를 불씨로 본격적인 달러 약세는 추세로 굳혀져 가고 있는 분위기다. 다만 일본 경기 역시 크게 나빠 엔화에 대해서는 약세가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달러 약세 추세로 전환한 것 같다"며 "일본 정부도 개입을 나오기는 아직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달러 약세와 급락을 막으려는 외환당국간의 대결 구도로 가고 있고 달러/엔이 뉴욕에서 119엔을 하향 돌파하면 1,270원까지 밀릴 것"으로 예상했다.
외국계은행의 다른 딜러는 "막판에 국책은행에서 종가관리성 매수세가 나온 것으로 봐서 환율을 지키려는 당국의 의지가 강하다"며 "NDF시장에서 1,275원이 허물어지면 추가 하락은 불가피하나 당국개입으로 어느 레벨까지 아래로 봐야할 지 고민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분위기는 아래쪽으로 굳어지고 있으며 내일은 1,268∼1,278원을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 깊어지는 달러 약세의 골 = 달러 약세에 대한 분위기가 원화를 강세로 몰아갔다.
달러/엔 환율은 오후 5시 현재 119.41엔으로 뉴욕 마감가보다 소폭 내린 수준으로 갔다.
도쿄장에서 한때 120.20엔선까지 오르기도 했으나 런던장에서 향후 미국 경기에 대한 불투명성이 부각되면서 달러화는 다시 약세로 돌아섰다.
달러화는 전날 뉴욕장에서 IMF의 달러화 고평가 경고를 빌미로 엔화에 대해 2개월중 최저치인 119.59엔, 유로화에 대해 5개월중 가장 낮은 수준인 91.44센트로 마감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날 달러/엔은 엔화 차익매물과 엔화 강세를 바라지 않는 일본 경제관료의 발언과 개입 경계감이 강해 오름세를 타기도 했다.
하야미 마사루 일본은행(BOJ) 총재는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 엔화 강세는 미국 달러화의 약세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엔화가치가 지나치게 오를 경우 일본의 수출업체들은 물론 다른 아시아국가 경제에도 타격을 줄 것"이라며 "현 시점에서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외국통화를 매수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나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의 동향을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시장 개입에 대한 경계감이 상존하지만 세계금융시장에 확산되고 있는 달러 약세 분위기가 꺾일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시장 참가자들의 지배적인 견해라 달러/엔의 추가 하락 가능성이 더 크다.
◆ 환율 움직임 및 기타지표 = 지난 화요일보다 무려 8.50원 낮은 1,280원에 출발한 환율은 개장 직후 1,274.50원까지 급락했다. 밤새 역외선물환(NDF)환율이 뉴욕장에서 119엔대로 폭락한 달러/엔을 따라 1,280원을 하향돌파하고 1,276/1,277원에 마감한 것을 그대로 흡수했다.
개장초부터 전날 마감가대비 10원이상 환율이 급락하자 외환당국이 구두개입에 나서 차츰 레벨을 높인 환율은 10시 35분경 이날 고점인 1,280.10원을 기록한 뒤 주로 1,279원선을 거닐며 1,279.40원에 오전 거래를 마쳤다.
환율은 오전 마감가보다 0.60원 내린 1,278.80원에 거래를 재개, 내림세를 보이며 레벨을 조금씩 낮춰 1시 50분경 1,277.80원까지 내려섰다. 이후 환율은 소폭 반등해 2시 12분경 1,279.50원까지 오른 뒤 되밀려 주로 1,278원선에서 거래됐다.
장 후반 환율은 3시 58분경 1,277원까지 내린 뒤 국책은행의 종가관리성 매수세로 소폭 올랐다. 오후 거래범위는 1,277.00∼1,279.50원으로 불과 2.50원에 그쳤다.
장중 고점은 1,280.10원, 저점은 지난 3월 14일 한때 다다른 1,269.30원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1,274.50원으로 하루 변동폭은 5.60원이었다.
국내 증시의 외국인은 거래소와 코스닥시장에서 각각 414억원, 14억원의 매수 우위를 기록했다. 이레만에 주식 순매수로 돌아섰으나 환율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날 현물 거래량은 서울외국환중개를 통해 18억9,510만달러, 한국자금중개를 통해 5억10만달러를 기록했다. 스왑은 각각 1억9,510만달러, 1억8,340만달러가 거래됐다. 17일 기준환율은 1,278.50원으로 고시된다.
한편 이달 들어 15일까지 무역수지는 15억9,700만달러로 올해 월별 15일 기준으로 가장 악화됐다. 수출은 전년동기대비 20% 준 38억9,500만달러, 수입 10.8% 감소한 54억9200만달러를 기록했다.
또 15일 현재 외환보유액은 977억6,000만달러로 전달말 대비 7억달러 증가했으며 사상 최고치다.
한경닷컴 이준수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