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패망 '秘史'] (12) 무산된 '슈퍼뱅크' 계획

김우중 회장의 오랜 숙원은 재계가 주인인 '슈퍼뱅크(초대형 선도은행)'의 설립이었다. 이는 기존 금융기관들에 대한 반감의 발로였지만 대우의 자금난 속에 김 회장이 생각해낸 또 하나의 돌파구기도 했다. 이헌재 금감위원장은 대우가 워크아웃에 들어간 뒤 기자들에게 "대우는 성장 과정에서 매뉴팩처링(생산)보다는 파이낸싱(금융)에 의존했다. 역설적으로 대우는 금융전문가가 많아서 망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지적은 재계와, 특히 김 회장과 당국자들이 결정적으로 견해를 달리하는 부분이었다. 김 회장은 IMF 사태의 원인을 낙후된 금융시스템으로 봤고 이 금감위원장 등 관료집단은 기업들의 과다한 부채를 근본원인으로 내세웠다. 동전의 양면같은 것이지만 그 차이는 엄청났다. 김 회장은 98년 6월9일 대우차 군산공장의 기자간담회에서 낙후된 금융의 선진화를 위한 슈퍼뱅크 구상을 처음 발표했다. 4대그룹이 5억달러씩 내고 씨티, 체이스맨해튼 등 미국계 은행이 20억달러를 출자해 자본금 40억달러 규모의 초대형 합작은행을 만들겠다는 것. 김 회장은 미국계와 합작이 잘 되면 유럽.일본계 은행과도 같은 방식으로 모두 3개 정도의 선도은행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전 포철 등 공기업과 6대 이하 그룹도 참여시킨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나 해당 외국은행들이 출자합의 사실을 모두 부인하고 재계의 출자금 갹출도 여의치 못해 말만 무성한 채 흐지부지됐다. 물론 김 회장의 슈퍼뱅크 구상이 6월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는 국민의 정부 정권인수위 시절부터 이미 정계 요로에 초대형 슈퍼뱅크 구상을 설파한 바 있었다. 김 회장은 해외매각이 추진되던 제일.서울은행중 한곳을 인수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이 구조조정을 압박할 때 대우측 반응은 "우리가 곧 인수하러 갈테니 기다리라"는 것이기도 했다. 아니러니였다. 특히 김 회장은 연세대 상대 동기동창(56학번)인 이관우 당시 한일은행장과 자주 만나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이 행장은 "김 회장이 오래전부터 금융업에 관심이 많아 함께 슈퍼뱅크를 만들자고 자주 권유했다"고 말했다. 한일은행은 그해 7월 상업은행과 합병(이후 한빛은행)을 발표했다. 슈퍼뱅크 구상은 99년 2월 전경련의 발전 5개년 계획인 '비전 2003'에도 담겼으나 대우가 워크아웃에 들어가고 김 회장이 전경련 회장에서 물러나면서 없던 일이 됐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