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44개월] "아직도 희망을 먹고 삽니다"..전직 증권맨 강태용씨


23일은 IMF(국제통화기금)에서 꾼돈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빚 1억4천만달러를 갚는 날이다.


97년 11월 시작된 IMF체제를 졸업하는 뜻깊은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 갑자기 길거리로 내몰린 수십만 회사원들도 이제 IMF로부터 자유로와질 수 있을까.


강태용(40)씨.


그는 98년 3월까지만해도 신한증권 의정부지점에서 약정 1,2위를 다투던 능력있는 증권맨이었다.
그러나 주가가 곤두박칠치기 시작하자 능력으로 평가받던 수십억원의 약정금액은 졸지에 빚으로 돌변했고 이는 정리해고자 우선순위를 가르는 화살이 돼 돌아왔다.


결국 6억원의 빚만 떠안고 실직자 신세가 됐다.

3년5개월이 지난 현재 강씨는 자신이 근무했던 서울 여의도의 신한증권 건물 바로 앞에서 노점 형태의 '강씨 손만두(017-205-3493)'를 운영하고 있다.


말이 좋아 사장이지 그의 곁에는 부인 이향희(35)씨가 유일한 동업자이자 말동무로 함께 할 뿐이다.

◇시련과 절망=아는 거라곤 주식밖에,관심이라곤 주가밖에 없었던 그에게 실직은 아주 비참한 현실로 다가왔다.


집은 압류당했고 예금은 몽땅 회수됐다.


6억원의 빚은 살인적 고금리로 인해 눈 깜짝할 사이에 9억원으로 몸집이 불어버렸다.


게다가 당시 4살과 2살이던 아이들도 벅찬 지경에 부인은 덜커덕 임신까지 해버렸다.


"축복 받아야 할 생명의 탄생을 축복해주지 못하는 신세가 너무나 서글펐다"고 회고하는 강씨의 눈가에 얼핏 이슬이 맺힌듯 했다.



◇그래도 일어서야 한다=강씨 부부는 굶어죽을 순 없다는 생각에 건강보조식품 외판원 생활로 새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평소 먹거리도 줄이는 판에 건강식품이 팔릴리 없었다.


6개월 만에 외판원 생활을 접고 나니 수중에는 정말이지 1원 한푼 남지 않았다.


직계 가족들에겐 더 이상 손 벌릴 면목이 없어 부인 이씨가 사촌 언니에게 50만원을 빌렸다.


리어카와 가스 화로를 구입,고구마 장사를 시작했다.


불과 두달만에 몸무게가 13㎏ 빠지고 허리는 6인치나 줄었다.


그래도 갓 태어난 아들과 두 딸,아내와 노모까지 여섯식구를 굶기지는 않았다고 한다.


남들은 식구가 짐이 돼 가정이 깨지기도 했다지만 그에게 있어 가족은 '짐'이 아니라 '힘'이었다.



◇희망이 보인다=칼 위를 걷는 것 같았던 순간들을 넘기고 나니 희망의 빛이 보이는 듯 했다.


99년1월 신청한 소비자파산이 받아들여진 것.


당시 신한증권 류양상 사장은 면책을 받으면 복직시켜 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러나 야속한 법원은 증권사 시절 빚을 막기 위해 카드빚을 낸 것을 두고 '방만한 생활'의 증거라며 면책을 거절했다.


그는 대표적인 IMF 실직자로 매스컴을 타면서 한때 유명인사도 됐다.


그렇다고 오늘 10만원어치 팔리던 만두가 내일 두배로 뛰진 않는다.


하지만 내년봄쯤 노점을 벗어나 빌딩 모퉁이라도 빌려 안정적인 장사를 하고 싶다는 꿈만은 버리지 않고 있다.



◇IMF체제가 끝났다고?=경기가 다시 하강곡선을 그리면서 인심도 사나워졌나보다.


고생한다며 격려해 주던 파출소 직원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걸면 걸리는 식품위생법 위반 딱지를 사정없이 끊고 사라진다.


IMF체제는 끝났다지만 고단한 강씨의 일상은 언제나 끝이 나려나.
그래도 희망으로 만두를 빚어 하루를 지낸다.


정대인 기자 big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