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졸업 서명 하던날] 뉴욕서 인출 유로貨로 입금

2001년 8월 23일 오전 10시 31분. 약간 푸른 빚깔을 내는 검정색 양복을 차려입은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는 상기된 표정으로 집무실에 들어섰다. 베이지색 둥그런 탁자에 의자를 당겨앉은 전 총재는 미리 준비해 놓은 국산 아피스 임페리얼 만년필을 꺼내들고 'IMF(국제통화기금) 신용인출잔액의 최종상환'이라는 제목이 적힌 결재서류에 서명했다. 카메라 플래시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IMF 구제금융을 들여온지 3년8개월여만에 모든 빚을 갚는 순간이었다. ◇ IMF에 자금상환 통보 =서명식이 끝나고 20분 가까이 지난 오전 10시 50분. 한은 별관 5층 국제협력실 국제기구팀에서는 장영옥(36.6급) 행원이 출입구 가까이 설치된 컴퓨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몇 개의 화면을 연속해 띄운 후 암호를 쳐 넣었다. 그리고 엔터 키. 잠시 후 컴퓨터 옆에 설치된 텔렉스에서는 "IMF가 지정한 독일 프랑스 그리스 아일랜드 쿠웨이트 등 5개 중앙은행 계좌에 돈을 보냈다는 사실을 통보하게 돼 기쁘다"는 편지가 한 줄씩 출력됐다. 한은이 마지막 상환분을 보냈다는 사실을 IMF에 통보하는 편지였다. ◇ IMF 자금 실제 상환 과정 =1억4천여만달러의 IMF 자금 마지막 상환분을 보내기 위한 실무작업은 이틀 전부터 시작됐다. 외환거래는 통상적으로 이틀 후 결제방식(Value Spot)이기 때문이다. 한은 외화자금국 운용2팀 장석민 딜러(조사역)는 지난 21일 미국 뉴욕 뱅커스트러스트컴퍼니(BTC) 한은 계좌에 예치돼 있던 1억2천7백만달러를 꺼내 홍콩과 싱가포르 외환시장에서 1억4천만 유로를 매입하는 외환거래를 했다. 다음날 한은 결제지원팀 금재명 행원은 BTC가 매입한 유로를 한은이 지정한 계좌로 보내라는 결제문을 발송했다. 1억4천만 유로는 독일 드레스너은행을 거쳐 독일 프랑스 그리스 아일랜드 등 4개국 중앙은행으로 보내도록 했다. 이 돈의 자금이체 업무는 한국시간으로 23일 밤과 24일 새벽에 이루어졌다. 쿠웨이트 중앙은행의 IMF 계좌에는 1천8백만달러를 현지통화로 바꾸지 않고 보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