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젊음의 "偉力"이 "僞力"이 돼선..신수정 <문학평론가>

'요즘 젊은 애들은…'이란 말을 부쩍 자주 사용하게 된다. 나이를 먹어가는 증상이라고들 한다. 한술 더 떠 보수적인 기성세대가 돼가는 증거라는 사람도 있다. 아닌게 아니라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지긴 한 것 같다. 그들만의 언어나 스타일,그리고 그들 특유의 감정구조까지-.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신라의 달밤'을 보고 난 뒤의 감회도 그랬다. 내겐 이 영화를 보고 즐거워하는 '요즘 젊은 애'들이 너무도 낯설었다. 나는 하나도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다.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즐겁기는커녕 괴로웠다. 그리고 정말 '꼰대'같은 말이지만,전혀 웃기지 않는 이 영화가 엄청 웃기는 영화로 수용되고 있는 현실 이면에는 그 웃음을 가동시키는 어떤 구조적 야만의 징후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바탕 웃자고 만든 영화를 보고 뭐 그리 오버하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노랗고 긴 것'하면 연상되는 것이 뭐냐는 물음에 다들 '바나나'라고 대답하는데,나 혼자 '고무줄'이라고 한 격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어쩌겠는가. '늙다리'라서 그렇다는데. 하지만 젊음이 이런 거라면 난 차라리 적극적으로 '늙고'싶다. 이 영화를 지배하는 단순성과 거기서 나오는 획일성,그리고 지독히도 강하게 내면화 된 일상의 도덕률이 젊음의 조건이라면 난 단연코 그것을 거부하겠다. 위대한 '삼마이'정신을 보고 화통하게 웃는 것이 젊음의 열정이라면,젊지 않은 게 낫다. 이런 신념은 그룹 '노브레인'의 일장기 훼손 사건을 보며 더욱 깊어졌다. 국내 언더그라운드 록그룹의 대표주자라고 할 '노브레인'이 일본의 유명한 록그룹 '엑스재팬'이 공연도중 태극기를 찢은 데 대한 항거표시로 일장기를 찢음으로써 발생한 이 사건의 개요를 전해듣고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듣자하니 '엑스재팬'의 태극기 훼손은 낭설이라는 이야기도 있는 모양인데,그렇거나 말거나 이 사건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사건과 맞물려 반일감정을 고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노브레인'의 홈페이지에는 그들의 '쾌거'를 찬양하는 글로 가득하고,그들은 순식간에 '민족영웅'으로 급부상했다. 나에게 이 사건이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무엇보다도 이들 그룹이 우리 사회의 주류질서를 전복하고 대안문화를 강조해 온 문화적 전위들이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점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이들 그룹의 자부심은 그 흔한 방송 한번 안타고,토크쇼에 나와 음악 이외의 잡담을 늘어놓지 않으며,엉뚱한 이벤트로 청중을 오도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오로지 '음악'으로 승부하겠다는 장인정신의 발로로 보아도 좋다. 그러나 이런 전위적 그룹에도 민족감정의 찌꺼기는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아니 오히려 전위의 이름이 더욱 원색적으로 민족적 단순성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인 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들은 일본의 태극기 훼손에 대항해 일장기를 찢음으로써 '순수한' 애국심의 발로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었다. 이게 말이 되는가. 진정 그들이 록정신의 후계자라면 정작 그들이 문제삼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우리의 뿌리깊은 무의식 아니던가. 사실 기성의 제도에 저항하고,그 저항을 통해 진정한 가치의 창출을 꿈꾸는 록음악의 역사에서 이런 식의 퍼포먼스는 그리 드문 것이 아니다. 가령 여왕을 모독하고 유니언 잭을 짓밟은 그룹 '퀸'이나 '섹스 피스톨즈'만 해도 그렇다. 그러나 비슷한 행태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노브레인'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들이 대영제국이라는 허위의식과 그 허위의식으로 지탱되는 시민사회를 문제삼았다면 '노브레인'은 이러한 맥락과 토대를 무시하고 그들의 습벽만 취한 것과 다름 없다. 그렇다면 그것만큼 '노 브레인'한 것도 없다. 그리고 그때 그것은 무지를 넘어 끔찍한 야만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젊다는 것은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그것은 때로 생각없는 경솔한 행동마저 진솔한 도발행위로 돌변시킬 정도로 강력하다. 실수를 열정으로,파격을 또 다른 창조로 전환시키지 않는 젊음은 없다. 그러나 나는 요즘 이 위력(偉力)이 위력(僞力)이 돼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것은 한때 내가 저지른 잘못이기에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