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개운찮은 인터넷 규제 .. 홍준형 <서울대 공법학 교수>

'e비즈니스'등 혁신적인 이익창출의 기회를 제공하는 인터넷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그 정치적 잠재력을 두려워하는 정부들이 적지 않다. 인터넷이 시간과 거리,국경을 뛰어 넘어 정보의 교환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이용자들 사이에 비판적인 정치사상의 확산을 가져오는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정경분리의 틀을 부지해 온 중국 정부가 불온사이트들의 대거 폐쇄 등 인터넷에 대한 강경 규제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사실 동구권의 붕괴나 동독의 몰락도 외부로부터 정보 유입을 성공적으로 차단하지 못해 자본주의 세계의 풍요와 기술적 우위를 알게 된 인민들의 정치적 각성에 기인한 것이었다. 북한 역시 중국만큼이나 인터넷의 정치적 임팩트를 우려할 것이고,바로 옆나라 중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예의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정부가 인터넷을 두려워하여 소수의 허가 받은 자에게만 이용을 허용한다든지,정부의 시각에서 보아 반정부적이거나 불온한 웹사이트나 정보콘텐츠들을 금지,폐쇄하고 범죄화할 경우 생길 수 있는 폐해는 가공할 만한 것이다. 한반도의 남쪽에서는 기가급 고급PC와 초고속서비스가 급속히 확산되어 가상공간이 기포처럼 퍼지며 PC방이다,게임방이다 불야성을 이루는데 북쪽에서는 전기부족으로 황혼녘이면 벌써 칠흑 같은 어둠이 지배하고 있다. 남한에서의 인터넷 보급·확산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아이들은 이미 선두그룹에 속하고 노인들도 인터넷문맹을 깨친 분들이 많다. 인터넷뱅킹이나 인터넷을 이용한 데이트레이딩이 보편화되고 있고 농촌에서도 인터넷을 통한 직거래시스템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기 시작하며 일부 지역에서는 인터넷택배서비스가 성업중이다. 그러나 우리는 좀더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아야 하겠다. 인터넷을 두려워하는 정부 밑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우리는 언뜻언뜻 관심을 받다가 결국 인터넷정책의 막 뒤로 사라지고 마는 '말없는 소수들'의 어두운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가. 없이 사는 집에서도 자식을 위해 빚을 내서라도 PC 하나는 장만해주는 것이 우리네 심성이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이 겪는,아니 이들의 후손이 없이 산 부모 탓에 인터넷대로의 뒤안길에서 겪게 될 고난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많은 북한동포들이 인터넷문맹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듯이 이들 또한 인터넷시대에 풍요속의 빈곤을 벗어나지 못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은 결국 인터넷을 통한 정보실존에서 소외되어 정치경제적으로 낙오되고 열등민으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터넷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그런 인터넷의 악몽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도 못하다. 얼마전 검찰에서 P2P 기술에 의한 음성자료 교환서비스를 제공해오던 어느 업체를 기소한 일을 두고 저작권옹호론자와 인터넷자유주의자 사이에 논란이 일었다. 정신적 창작의 보호가치나 사회경제적 유용성이라는 저작권 옹호론자가 종종 숭고한 표정으로 동원하는 명분도 중요하지만 인터넷에서 사람들끼리의 정보교환을 돕는 일을 저작권보호 이유를 내세워 꼭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았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P2P 같은 유형의 서비스는 경우에 따라서는 대중의 인터넷 이용을 촉진하여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실존을 구현할 수 있도록 돕는 매우 바람직한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주로 인터넷이용자들이 애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인터넷문맹들이 인터넷의 그늘에서 벗어나도록 유도하기 위해 강구해 보아야 할 몇몇 주요 수단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인터넷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다행이지만 정부가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지나치게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물론 사람들의 명예나 권리를 현실적으로 침해하는 이상 그러한 침해행위를 막고 제재함에 있어 실물세계와 사이버스페이스를 가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사이버스페이스 전체가 어쩌면 정부의 개입,과잉규제를 극히 꺼리는 표현의 자유로 충만한 공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하물며 인터넷을 통해 사이버스페이스의 시민광장을 만들어 나가는 여정에 재를 뿌려서는 안될 일이다. joonh@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