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인 탐구] 잭 웰치 <GE 회장> .. 7일 은퇴하는 'GE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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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기업계의 한 신화가 사라진다.
경영의 귀재,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당대 제1의 최고경영자(CEO).
잭 웰치(65)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이 오는 7일 공식 퇴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
GE가 어떤 회사인가.
세계에서 가장 우량한 기업, 주식시가총액 세계 1위,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이 아닌가.
이 GE 제국을 완성한 인물이 웰치 회장이다.
GE의 영광과 명예는 곧 웰치 회장의 영광과 명예였다.
그는 GE였고 GE는 그였다.
지난 20년간 "웰치없는 GE"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 때문에 웰치 회장은 세계기업인들의 사표(師表)가 됐다.
기업인이라면 누구나 그의 경영철학과 이념을 배우고 따랐다.
너무나 유명한 1,2등주의, 식스시그마(제품무결점) 운동, 직원 교육훈련은 그의 3대 경영철학이다.
1936년 매사추세츠주 살렘의 아일랜드계 노동자의 외아들로 태어난 그는 일리노이대에서 화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웰치 회장의 경영자 인생은 1981년에 시작됐다.
그해 4월 GE 회장겸 CEO였던 레그 존스는 거의 무명인 45세의 웰치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61년 GE에 입사한 GE맨인 그는 존스 회장의 그늘에 가려 존재가 미미했었다.
지금 제프리 이멜트(45) 차기회장이 웰치라는 태산에 눌려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당시 존스 회장 역시 매우 훌륭한 기업인중 한 명이었다.
제8대 회장이 된 웰치는 곧바로 GE를 수술대위에 올렸다.
80년대초 GE는 조직의 관료화와 고비용 저효율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대대적인 다운사이징(감량경영), 관료주의를 혁파하고 기업을 저비용고효율 체제로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이었다.
취임후 7년간 10만명을 잘라냈다.
무자비한 대숙청이었다.
그래서 그에겐 무시무시한 닉네임이 붙었다.
'중성자탄 잭(neutron-bomb Jack)' '도끼인간(hatchet-man)'.
웰치 회장은 수많은 희생자의 비명소리를 듣고서야 당대 최고의 기업인이 될 수 있었던 셈이다.
최근 그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 GE는 느릿느릿한 슈퍼탱커(초대형 유조선)였다. 나는 이것을 스피드보트(쾌속정)로 만들고 싶었다"
웰치 회장의 영광과 명예의 씨앗은 취임 첫해 한 경영학 대가와의 우연한 만남에서 뿌려졌다.
그해 가을 웰치 회장은 지인의 소개로 피터 드러커(91)를 만났다.
드러커는 웰치 회장에게 이런 화두를 던졌다.
"기업총수로서 어떤 경영철학을 가질 것인가"
이 화두를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온 웰치 회장은 몇날 며칠을 고민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 1등이 아니면 하지를 말자. 각 분야에서 등수에 못드는 사업은 버리고 1,2등을 할 수 있는 사업만 키우자"
이어 그해 12월 자신의 '1,2등 철학'을 경영이념으로 정리해 사내에 공표했다.
몇달전 웰치 회장이 미국 USA투데이에서 밝힌 사실이다.
그는 이 철학에 근거해 사업성 없는 사업부서를 모조리 털어냈다.
취임후 3년간 그의 적은 내부의 개혁저항 세력이었다.
이 저항세력에 맞서는 논리로 일본과 독일 기업들의 대대적인 미국상륙작전을 내세웠다.
80년대는 소니와 도시바 마쓰시타전기 지멘스 등 일본및 독일기업들이 물밀듯이 미국으로 진출, 미국기업들을 본격적으로 위협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일본과 독일기업들에 지지 않으려면 GE가 환골탈태해 새로운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웰치 회장은 GE를 1등기업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으로 과감한 기업인수합병(M&A) 전략을 택했다.
국내외 관련 업계를 저인망식으로 훑어 유망한 기업들을 대거 사들였다.
지난 20년간 무려 2천여건의 크고 작은 기업인수를 성사시켰다.
한해 평균 1백건이었다.
사업성 없는 분야는 미련없이 버리고 장래성 있고 이미 업계에서 1,2등을 하는 기업이나 사업부를 과감하게 사들였다.
이를 통해 그는 GE를 세계 최우량기업으로 만들어냈다.
취임하던 해 2백80억달러이던 매출은 지난해 1천3백억달러로 급증했다.
이익은 16억달러에서 1백30억달러로 늘었다.
1백억달러이던 주식시가총액은 4천억달러로 불어났다.
시가총액면에서 GE와 1,2위를 다투던 시스코시스템스 주가는 지난 1년 사이에 경기불황으로 절반 이하로 크게 떨어졌다.
그러나 GE 주가는 사상 최고치인 작년 3월의 주당 60달러에 비해 10달러가량 낮은 50달러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1,2등주의는 그러나 5년전에 웰치 회장 곁을 떠났다.
연초 주주들에게 보낸 e메일을 통해 웰치 회장은 1,2등주의 포기사실을 처음으로 고백했다.
1,2등만 강조하다보니 유망하지만 1,2등은 할 수 없는 사업들을 버려야 하는 폐단이 생겨 95년에 이 원칙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웰치 회장이 당초 예정대로 올 4월에 퇴임했더라면 모양새가 더 좋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퇴임전 마지막 역작을 만들려고 과욕을 부리다 오점만 하나 남기고 물러나게 됐다는 것이다.
그 오점은 하니웰 인수무산.
그는 작년 11월 이멜트 사장을 후계자로 임명하면서 하니웰의 인수합병을 마무리하고 떠나겠다며 퇴임시기를 올 11월로 연기했다.
그러나 합병규모가 4백30억달러에 달하는 GE-하니웰의 합병은 실패로 돌아갔다.
독점문제로 유럽연합(EU)과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EU로부터 '합병불가' 통보를 받고 말았다.
퇴임을 늦추면서까지 필생의 마지막 작품으로 추진했던 이 인수합병건이 실패하자 그는 퇴임시기를 다시 9월7일로 두달 앞당겼다.
아직 웰치 회장에겐 진짜 시험결과가 하나 남아 있다.
그 결과가 나쁠 경우 그의 명예와 영광도 빛을 잃는다.
그의 후계자가 GE를 최고의 기업으로 계속 이끌어 갈 것이냐가 그에게 남은 최후의 시험이다.
자신의 손으로 뽑은 이멜트 차기회장의 지휘속에 놓인 GE가 쇠락의 길을 걷는다면 웰치 회장은 궁극적으로는 실패한 경영자가 되고 만다.
훌륭한 후계자를 뽑는게 회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임무중 하나라는 게 GE의 불문율이다.
이 점에서 7대 회장인 레그 존스는 가장 뛰어난 GE 회장이었다.
웰치라는 걸출한 인물을 후계자로 앉혔으니까.
이정훈 기자 lee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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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1936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살렘 출생
일리노이대 화공과 졸업
1961년 GE 입사
1981년 4월 제8대 GE 회장 취임
1981년 12월 1,2등주의 선언
1996년1월 식스시그마운동 채택
2000년 11월 제프리 이멜트 사장을 후계자로 임명
2001년 7월하니웰 합병 무산으로 명성에 흠집
2001년 9월7일 공식 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