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패망 '秘史'] (17) '대우를 해체하라 (中)'

대우해체 과정에서 워크아웃보다 더 급한게 있었다. 바로 '시장'이었다. 오늘 취재팀은 이헌재 사단이 하루 수조원으로 불어난 대우채 펀드 환매를 어떻게 잠재웠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증권투자자들의 호주머니를 채웠으나 정부는 아직 미안하다는 말을 않고 있다. 둑이 터지는 것을 막았다는 일방의 찬사와, 관치금융의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폄하가 아직도 공존해 있다. 대우해체의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라면 김 회장과 대통령의 담판이나 경제관료와 기업인의 태생적인 갈등이 아니라 바로 오늘 들려드리는 이 장면일지도 모른다. "다들 죽는 겁니다" 99년 8월9일. 마포의 할리데이인 호텔. 두 사람의 신사가 긴장된 얼굴로 14층 스위트룸에 차례차례 들어섰다. "맞아?" 유달리 눈동자가 튀어나온 중년의 사내가 자리에 앉은 채 주위 사람을 둘러보며 물었다. '눈동자'의 부하직원이 두명의 신사를 차례차례 소개했다. "미안하지만 각서부터 써주시오" 와이셔츠 바람인 '눈동자'가 고압적인 자세로 종이를 한장씩 내밀었다. 호텔로 불려온 사람들은 삼성투신과 대한투신의 간부들이었다. "절대로 외부발설은 안됩니다. 작업이 끝나도 우리가 됐다 할 때까지는 당분간 회사 출근도 안됩니다. 아시겠습니까" '눈동자'가 두툼한 서류뭉치 위에 한장짜리 개략도를 얹어 내밀었다. 제목은 '대우채 환매연기'. 50,80 등의 숫자가 어지럽고 3개월, 6개월 등의 단어도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조용히 서류만 내려다 봤다. 사무실로 개조한 스위트룸이 담배연기로 가득차고 시간이 한참이나 흘렀다. "제대로 작동하겠습니까?" "예, 이 정도면 되겠습니다" '눈동자'는 "됐어" 하면서 서류를 잡아채듯 빼앗아 갔다. 강요된 자율 이틀 뒤인 8월12일 밤 8시30분. 50여명의 증권회사 투자신탁회사 사장들이 금감위로부터 긴급호출을 당해 투신협회 대회의실로 속속 모여들었다. 대부분 사장들은 영문을 모른채 어리둥절한 표정들이었다. 한국 대한 등 몇몇 대형 투신사 사장들만 불과 1시간 전에 그것도 간단한 개요만 통보받았을 뿐이었다. 회의는 김영재 금감원 부원장보(증권담당)가 끌어갔다. 탁자 위에는 '눈동자'와 그의 부하들이 며칠 밤을 꼬박 새워 만들어온 '대우채 환매연기 조치' 자료가 놓여 있었다. 고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사장들은 차례차례 아무말 없이 사인을 했다. 일부 사장들이 "그럼 손실은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모두 떠안아야 합니까" 하고 반발하기도 했지만 따가운 눈초리만 돌아올 뿐이었다. 사실 투신사 사장들도 달리 대안이 없었다. 하루하루 피를 말리며 "내돈부터 돌려달라"는 고객들의 봇물 터지는 환매요구에 대처해 오던 터였다. 같은 시각 금감위 기자실에서도 무려 1백10조원의 대우채펀드에 대한 '8.12 환매연기조치'가 발표됐다. 김종창 상임위원(현 기업은행장)이 발표를 맡았다. 대책반장만 8번째 이에 앞선 7월25일. 이헌재 위원장은 김종창 상임위원으로부터 '금융시장 특별대책반'(반장 이용근 금감위 부위원장) 구성을 보고받고 그 자리에서 볼펜을 들고 '실무기획반 반장 김석동'이라고 그려넣었다. 우리가 '눈동자'라고 부른 바로 그 사람(현재 금감위 감독정책1국장, 당시 과장)이었다. 재경부에서 금감위로 전입해 온지 한달이 채 안된 그에게 투신 환매대책이라는 화급한 과업이 맡겨졌다. 김 과장은 이미 한보대책반 금융실명제대책반 등 대책반장만 7번을 지낸 터였다. 자타가 공인하는 '해결사'. 김석동 과장은 곧바로 여의도 맨하탄호텔에 작업장을 차렸다. 그러나 다른 일로 호텔 로비에 나타난 신문기자를 보고 바로 마포 홀리데이인호텔로 도망치듯 캠프를 옮겼다. 투신문제가 터지다 99년 7월19일 대우구조조정 계획이 발표되자 이제 비밀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삼척동자도 대우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고 눈치 빠른 사람들부터 투신에 맡겼던 돈을 빼내가기 시작했다. 투신사 수탁고는 IMF 체제에 들어선 98년초 90조원에서 99년8월엔 2백50조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시장'이라고 함은 바로 투신문제이기도 했다. "하루 1조~2조의 자금이 투신에서 빠져 나갔습니다. 7월30일 청와대 재경부 금감위 등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청와대 서별관에서 열렸어요. 5개 은행 퇴출 때처럼 금감원 직원들을 투신사에 투입해 전산을 장악하고 환매금지 조치를 단행하자는 강경론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금감위 고위 관계자) 투신 펀드는 투자자가 먼저 돈을 뺄수록 이익인 구조였다. 고객이 환매를 요구하면 투신사는 채권을 팔아 돈을 내줬다. 그래서 금리가 올라가면 다시 환매가 늘어나는 악순환이었다. 더구나 대우채권이 안팔리니 우량채권만 팔게 되고 결국 돈을 빼지않은 투자자는 고스란히 대우채?떠안게 되는 식이었다. 기간에 따라 원금의 50,80,95% 지급했던 '8.12 환매연기조치'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동그라미 하나 더 붙여" 이것으로 끝난게 아니었다. 투신권에서 썰물처럼 빠진 자금이 이제 은행으로 몰려들었다. 석달새 무려 50조원이 늘었다. 그러나 은행들은 극도로 대출을 기피했고 회사채도 사지 않았다. 시중에 돈이 말랐다고 아우성이었다. 기억에도 생생한 '11월 대란설'이 불거져 나왔다. 대우채 환매 지급액이 11월10일부터 50%에서 80%로 높아지면서 환매요구가 쏟아져 일대 위기가 올 것이란 시나리오였다. 결국 정부는 유례없는 '채권시장 안정기금'을 내놨다. 처음 재경부가 만든 방안은 '2조원 규모의 안정기금 조성'이었다. 그러나 턱도 없었다. 다음은 금감위 관계자의 증언. "재경부 초안은 2조원이었다. 그 자리에서 동그라미 하나를 더 붙였다. 나중에 10조원을 더해 모두 30조원이 됐다" 채안기금은 증권맨 시절 직접 채권을 팔기도 했던 김정태 주택은행장에게 맡겨졌다. 이렇게 정부는 대우해체 파문을 수습해 갔다. 하지만 숙제는 남아 있었다. 해외채권단과 김우중의 마지막 버티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 특별취재팀 = 정규재 경제부장(팀장) 오형규 이익원 최명수 조일훈 김용준 기자 ] --------------------------------------------------------------- 독자 여러분의 제보와 조언을 듣고자 합니다. 전화 : 360-4175~9 팩스 : 360-4351 e메일 : ec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