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터닝포인트] 유철호 <LG화학 유화사업본부장>

"좌절은 없다는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정면으로 부딪치면 안풀릴 일이 있겠습니까" LG화학 유철호 유화사업본부장(부사장)은 여간해선 잘 웃지 않는 편이지만 그동안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이같은 생각으로 헤쳐 나왔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유 부사장은 "어느 한 순간 힘들지 않았던 적이 없었지만 홍콩으로 발령받은 직후의 얼마간은 그야말로 악몽같은 시절이었다"며 마음에 담아 놓았던 고생담을 털어놓았다. 이 회사에 입사한지 스무해 되던 지난 95년초, 그는 줄곧 맡아 왔던 기획업무를 떠나 홍콩지사장으로 발령받았다. 손에 익지 않은 업무이기도 했거니와 '좌천'이 아니냐는 주변의 따가운 눈총도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스스로 일을 찾아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일과로 그같은 마음고생을 잊으려 노력했다. 그러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고 업무에 착수하면서 또다시 그의 힘든 행보는 시작됐다. 아시아 금융중심지인 홍콩에서 자금을 조달하자고 본사에 보고하면서부터다. 그것도 국내 은행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추진했다. 유 부사장은 "막상 현지 차입을 추진하라는 결재가 떨어지자 뚫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어서 막막한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지사 형태로는 자금차입이 안돼 96년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보다 싼 이자로 차입하기 위해 금융흐름을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결국은 수업료로 다 날렸지만 개인적으로 우리돈 1천만원을 금(金)과 주식 등의 현지 선물시장에 투자해 보기도 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96년말 드디어 2천만달러를 빌리는데 성공했다. 홍콩시절 초창기에 한 고생 덕분에 IMF 관리체제 직후 달러 한푼이 귀하던 때에도 6천만달러나 본사로 송금할 수 있었다. 지금은 자금 차입한도를 1억달러까지 늘려 놓은 상태다. 그는 "한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나서 이같은 뚝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걸프전이 한창이던 지난 90년 가을 LG가 지분참여한 사우디아라비아 회사의 이사회에 참석했다가 떨어지는 포탄을 피해다니는 위기를 경험했다는 것. '눈앞에 포탄이 날아와 금새 직경 3m나 되는 분화구로 돌변하는 아찔했던 순간'이었단다. 5년간의 홍콩생활을 마치고 올해초 유화사업본부장을 맡은 그는 지금도 틈틈이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직장인 후배들에게는 "국제화시대에 발맞춰 한가지 이상의 외국어를 익히는 것은 물론 음악이나 그림 등을 즐기면서 마음의 여유를 갖고 건강을 챙겨야 한다"고 충고했다. 손희식 기자 hsso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