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경제학 수난시대

엔지니어와 화학자,그리고 경제학자가 먹을거라곤 전혀 없는 무인도에 표류했는데 때마침 캔수프 한통이 파도를 타고 밀려왔다. 엔지니어가 "어서 돌멩이로 캔 뚜껑을 따자"고 하자 화학자는 "그럴 필요 있나. 불을 지펴 캔을 데우면 될걸"하며 반박했다. 이때 경제학자가 "자, 여기 캔따개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며 장광설을 늘어놓기 시작해 결국 세사람은 수프를 못먹고 잠을 자야 했다. 경제학의 비현실성을 풍자한 얘기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저명한 경제학자인 시카고대학의 루카스 교수가 얼마전 미국 법정에서 한 증언이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기각당했다고 한다. 전에도 10여명의 경제학자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하니 경제학 수난시대라고나 할까. 경제적 이해득실은 갈수록 중요해지는데 정작 경제이론은 비현실적이라고 조롱받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유는 가정의 현실성보다 논리적합성을 더 중시하는 루카스류의 학풍이 득세한 탓도 있고, 너무 수학에 의존하는 방법론적인 한계도 없지 않다. 2백년이 넘는 경제학 역사에서 사회주의체제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마르크스 경제학, 대공황 극복에 기여한 케인스 경제학 등 숱한 경제학파가 생겼고 거대한 이론체계(패러다임)가 형성됐다. 그런 가운데 "세계역사를 뒤흔든 대사건의 배경을 알고보면 이름없는 어느 학자의 경제사상일 수 있다"는 케인스의 말처럼 학문적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고, 수학과 계량분석을 이용해 매우 정교한 이론체계를 발전시켜 '사회과학의 여왕'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실업이나 물가불안 같은 전통적인 경제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인구 범죄 환경 등으로 경제학의 영역을 넓혀온데 대해, 영국의 경제학자인 로빈슨 여사가 "경제학이란 경제학자가 연구하는 모든 것"이라고 비꼬며 경제학 위기를 갈파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석유파동 이후 세계경제를 휩쓴 스태그플레이션이나 최근 미국의 '신경제'현상 등 기존 경제이론으로 설명하기 곤란한 현실세계의 문제들에 대한 경제학의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