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테러' 충격이후 무엇이 오나..김병주 <서강대 교수>

김병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인가. 핵무기인가,생화학 무기인가. 11일 아침(뉴욕 현지시간) 세계 최대 경제국의 심장임을 상징하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붕괴시키고,세계 최강국의 군대를 통할하는 펜타곤 일부를 파괴시킨 것은 놀랍게도 일상적으로 무기랄 수 없는 일반여객기였다.가공할 것은 '사람',그리고 그를 자살 폭력자로 만드는 '생각'일 것이다.그렇다.빗나간 생각,정신,사상,철학,종교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미국 역사상 침공받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 때마다 상대방이 분명했다. 미국은 하바나항에 정박중이던 메인호 폭파사건(1898년 1월)을 빌미로 삼아 스페인과 싸우고,진주만 공격(1941년 12월 7일)을 계기로 일본과 전쟁을 치를 때 그랬다. 이번 사건은 인명과 재산 피해로 따져 역사상 어느 사건보다 큰 충격이지만,아직 상대가 분명치 않다.현재로는 중동지역의 테러집단들이 의심받고 있다. 바로 여기에 미국의 고민이 있다.상대가 분명히 밝혀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보복에 나서면 세계여론의 비난이 우려된다. 반면 조사기간이 길어지거나 흐지부지되는 낌새가 있으면,제2,제3의 테러사건이 이어질까 걱정이다. 미국만이 아니라 문명세계 전체의 고민거리다. 그래서 영국의 블레어 총리 등 서방지도자뿐만 아니라 러시아 푸틴 대통령도 비난하고 나섰다.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의 권위 실추는 이곳 저곳 깡패국가들의 모방테러를 유발할 수 있다. 중동지역,그곳은 예전부터 광신도들의 온상이었던 것 같다. 옛 페르시아시대 이름난 시인 철학자 수학자였던 오마 케이엄(1048∼1131)의 생존 당시에는 대마초를 피워 환각상태에 빠진 자객을 보내 적을 살해하는 테러집단이 맹위를 떨쳤다 한다. '대마초(해시시)를 먹는 자'란 뜻으로 암살자(어새신)란 말이 이렇게 유래됐다. 아프가니스탄에 은거하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팔레스타인 과격집단 등이 추종자들을 사상으로 무장시켜 목숨 내놓고 폭력행위를 서슴지 않게 만들고 있다. 이같은 사건의 파장은 어떠할까. 세계대전은 아닐지라도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할 것이다. 지난 10여년 미국경제가 단독으로,그것도 미국 민간소비의 확대 덕분에 세계경제가 불황의 늪 밖에서 지탱할 수 있었다. 이제 그 버팀목이 무너지지 않나 우려된다. 테러 공포는 직접적으로 증시를 냉각시키고 미국민의 소비심리를 위축시킬 것이다. 미국의 신뢰추락으로 달러가치 급락이 우려되고,이것이 미국내 물가상승과 추가적 주가폭락으로 연결된다면 더욱 소비심리가 움츠러들 것이다. 이는 한국과 같은 대미 수출의존이 큰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이다. 달러의 급락으로 금과 같은 대체자산과 원유 등 전략물자의 국제시장가격 급등이 예상된다. 수출입 양쪽의 압박에 밀려 우리 경상계정 국제수지의 적자반전이 나타날 수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개도국을 떠나 선진국으로 움츠리는 국제자본이동의 궤도수정이다. 한편 미국은 미사일 방어체제(MD) 구축 등 방위산업의 가동률을 높일 것이지만,그 경제적 파급효과가 민간소비감소를 상쇄하기엔 힘겨울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여행객 감소,출입국 심사의 강화 등으로 항공 호텔 음식점을 비롯한 여행 관련업종에도 된서리가 내릴 것이다. 올해 한국방문의 해에 이어 내년 월드컵의 해에 거는 기대가 찬바람을 맞을까 우려된다. 이번 사태의 교훈은 무엇인가. 충격적 사태 발생 가능성은 전시 못지 않게 평화시에도 있다. 전시에 비해 국민의 정신이 해이하고 단결이 어려운 평화시에 충격의 파괴력은 더 크다. 무기보다 무서운 것이 정신이다. 우리가 정치 경제적으로 무엇을 지향하는지,정체성을 분명히 가다듬는 방향으로 정치권의 모래바람이 잠재워져야 한다. 모든 상황으로 미루어 세계공황으로 빠질 공산은 낮지만,불황의 장기화 가능성은 매우 높다. 금년말 또는 내년 상반기에 미국경제의 호전은 물건너 간 것 같다. 우리의 선택은 자명하다. 구조조정을 늦추지 말고 제한적 경기대책을 펴나가며 세계경제의 호전을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는 현대문명이 돌팔매질에 취약한 유리집이며,테러 후에도 고층 유리집을 짓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한다. pjkim@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