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지혜를 찾아서

미국에 대한 테러사태가 전쟁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증시 충격이 가중되고 있다. 종합지수는 460대로 떨어지며 연중 최저치를 경신했고 코스닥지수는 사상 최저치로 내몰리고 있다. 국내 증시는 물론 일본 닛케이지수가 5% 이상 폭락하며 9,500선으로 밀리며 17년 최저치로 추락했고, 홍콩 항셍지수도 10,000선이 붕괴된 이래 3% 이상 급락했다. 아시아 증시는 미국의 사실상 전쟁 선언에 따라 정치·군사적 위기감에 급락하는 가운데 경기침체 우려감에 첨단기술주를 비롯해 수출관련주가 크게 하락하고 있다. 항공 관련주가 급락함은 물론이다. 미국 사태는 증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외환, 채권 등 금융시장으로 일파만파 전해지고 있으며 위험자산 줄이기 차원을 넘어 투자자들을 심리적 공황상태로 내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시장간 또는 시장 내 안전자산으로 자금 이동에 가속도가 붙으며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다. 삼성증권의 유욱재 수석연구원은 "미국의 보복 공격에 따른 전쟁발발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이해되면서 충격이 시장에 반영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단기적으로 낙폭이 과대했던 상황이기 때문에 보수적이되 차별적인 시각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 단기적으로 미국 시장이 개장됨에 따라 개장 충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면서 그 파장에 촉발된 관심을 나타내고 있으며 △ 미국의 정치·군사적 보복 강도와 이에 대한 회교국의 반응 등이 중장기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뉴욕과 워싱턴 등 미국의 심장부에 대한 테러 이후 아직 진상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고 사태 수습의 초기 국면에 불과하기 때문에 향후 전개될 상황이 극히 불투명한 상태이다. 인명을 구조하고 사상자를 파악하는 동시에 붕괴된 세계무역센터 건물의 잔해를 처리하는 데도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관측된 상황에서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최후통첩 속에서 전운이 감돌고 있다. 반인류적 테러에 대한 규탄이 미국의 보복의 정당성에 대한 전세계적 지지로 표명되는 가운데 미국은 사실상 선전포고와 함께 전쟁 준비에 돌입했으며 이번 주말 무렵 공격 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의 패권주의적 성향과 그 이면의 폭력적 이중성에 대한 국제 사회의 신중론이 제기되는 한편 미국의 전쟁선포에 맞서는 현지 회교권 국가들의 응전 태세 또한 예사롭지 않다. 제국주의 팽창과 제1,2차 세계대전, 공황과 극한적 냉전체제로 대변되는 20세기 '야만의 세계'를 경험했던 인류 세계는 '반인류적 테러와 21세기 첫 전쟁'을 앞에 두고 과연 끔찍한 '문명의 충돌'을 어떻게 피해가야 하는 지 새로운 역사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 미국시장의 개장 충격, 외인·환율동향 주목 = 시장 전문가들은 국내 증시는 미국시장의 개장 충격과 전쟁선언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450선에서 일단 안정세를 찾아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KGI증권 조사부의 황상혁 선임연구원은 "미국 증시가 5∼7% 가량 하락한 뒤 안정을 찾아간다면 국내 지수는 450선에서 지지를 받을 것"이라며 "그러나 당분간 500선 이상으로 갭을 메울만한 요인은 발견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시장의 개장 상황을 확인해야 하는 관점에서 일단 단기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인 상황이다. 지난주 테러 이후 아시아-유럽을 잇는 '하락의 연쇄고리'가 지속되고 있어 무엇보다 미국 시장의 개장 이후 방향이 주목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사실상 보복전쟁을 선언한 상태이기 때문에 경제지표나 기업실적 등 경제변수보다는 '테러의 충격'과 향후 정치군사적 분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관심사다. 이에 따른 시장심리적 변수는 분명 세계 금융시장의 변동동인이 될 것이다. 특히 당장 국내 시장은 미국 증시의 하락 정도와 그에 따른 외국인의 매매동향이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신영증권 김인수 투자전략팀장은 "단기적으로는 미국 증시 개장 이래 단기 충격이 가장 큰 관심사"라며 "이에 따른 달러 움직임과 외국인 동향이 국내 시장의 최대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주 미국시장 폐장기 동안 외국인은 국내 증시의 폭락 상황에서도 대규모 순매수로 대응하고 순매도를 보이더라도 매도규모를 키우지 않는 비교적 차분한 관망세를 보여 왔다. 이런 외국인의 관망세는 보유비중이 높은 지수관련 대형주의 상대적 안정성으로 나타나 지수 낙폭을 줄여주는 역할을 했다. 이날 SK텔레콤, 포항제철, 국민은행 등에 대한 외국인 매수도 급락세를 둔화시킨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외국인의 이런 태도에 대해 최근 미국 사태 이후 2%대 성장률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으나 아시아 국가 중에서 그나마 비교적 견실한 경제성장이 예상되고 있는 것도 외국인의 투자처에 대한 '대안부재론'으로 꼽힌다. 또 최근 달러/엔이 지속적막?하향하면서 달러/원에 하락압력을 부분이나마 주고 있는 것이 원화베이스 국내 주식을 보유하더라도 외국인이 크게 손해보지는 않았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사태 이후 세계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짐에 따라 특히 달러/원 환율은 외국인 매매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변수 중의 변수가 되고 있다. 이날 오전 달러/엔이 116∼117엔으로 하락했으나 달러/원은 하락동조화에 가담하지 않고 오히려 1,290원대로 상승세를 유지했다. 연이은 주가 급락과 경기침체 전망에 따라 역외세력이 달러 매수에 가담하면서 달러/엔과 하락동조화가 느슨해진 것이다. 그러나 일본 중앙은행이 달러/엔 급락이 수출타격 예상에 따른 닛케이지수 폭락으로 비화되자 외환시장에 달러 매수개입, 달러/엔이 118대로 급등하자 달러/원도 상향 동조화가 즉각 이뤄졌고, 외국인 주식 매도가 늘어났다. 전체적인 경기나 금융시장 상황에서 달러/엔 환율에 대한 하락 동조화는 약화된 반면 상승동조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점에서 달러/원 상승폭 확대될 경우 외국인 주식 매도 가능성에 좀더 경계의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기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국내 수출이 악화되고 경기침체 우려감이 농후해지자 정부는 '제3단계 대책'을 언급, 확대 금융완화·재정정책으로 경제정책 방향을 돌렸다는 점 또한 원화약세 가능성을 유도할 수 있다. 물론 물가상승이나 외국인 매도촉발에 따른 증시여건을 간과하고 달러/원의 무조건적인 상승을 방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정부와 외환당국의 대응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경닷컴 이기석기자 han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