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들의 골프 뒷얘기] 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3>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은 골프를 참 서민적으로 즐겼다. 장갑은 절대로 새 것을 끼지 않았다. 항상 낡은 장갑이었다. 옷도 누군가가 새 것을 선물하면 불편하다면서 예전에 입던 옷만 입었다. 골프백도 낡아 보기에 흉할 정도였다. 골프백은 외국산도 아닌 국산백이었다. 그래서 정상영 금강고려화학 명예회장이 몇번이나 바꿔 드리겠다고 말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클럽은 요넥스사 제품으로 기억하는데 20년도 더 된 것이었다. 정 명예회장의 영향을 받아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과 몽헌 현대아산 회장 등도 클럽이나 백들이 평범하기 그지 없는 것들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라운드할 때 진행이 밀려 앞팀을 만나더라도 절대 '패스'를 받지 않고 앞팀이 치기를 기다렸다가 쳤다. 또 라운드하는 도중 사업 얘기는 전혀 꺼내지 않은 것도 독특했다. 골프는 오로지 운동으로서만 즐겼다. 라운드할 때는 말도 별로 없었다. 그늘집에서는 가족에 관한 일상적인 대화만 나눴다고 한다. 정 명예회장은 라운드할 때 주로 골프카를 타고 이동한 반면 다른 동반자들은 걸었다. 캐디는 2명이 붙었는데 1명은 정 명예회장을 맡았고 1명은 나머지 동반자 3명을 도왔다. 정 명예회장을 도와주는 전담 캐디가 있었다. 현재 금강CC 캐디마스터를 하고 있는 길미희씨다.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 전만 해도 정 명예회장은 1백타 안쪽의 스코어를 낼 정도로 체력이 좋았다. 스윙도 거의 정상에 가까웠고 골프카도 타지 않고 걸어서 라운드했다. 겨울에도 아주 춥지 않으면 9홀이라도 돌았다. 중간에 라운드를 중단하는 일은 절대 없었다. 가족들과 라운드할 때는 볼 3개를 내기상품으로 내걸기도 했다. 라운드하다가 가족 중 누군가 잘 못치면 "젊은 놈이 그것도 못쳐"라면서 웃으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스윙은 연습스윙 없이 바로 치고 나갔다. 앞뒤를 재거나 방향을 보거나 하는 것이 없었다. 왼손잡이인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은 핸디캡 15(그로스 87타) 정도로 수준급이었고 몽헌 회장과 몽윤 현대해상화재 고문은 보기플레이 수준의 실력이었다. 기계체조를 한바 있는 몽헌 회장은 엄청난 장타자로 신입사원씨름대회에서 1등을 할 정도로 강골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1백타를 넘는 보통의 기량이다. ◇도움말=이강천 전 금강CC 헤드프로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