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지명수배와 추격대..홍준형 <서울대 공법학 교수>

선량한 시민이 습격을 받은 후 보안관은 범인을 지명수배하고 추격대를 조직해 추격에 나선다. 서부극에서 본 장면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부시 대통령은 최근 한 기자회견에서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을 보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지명수배 생사불문'이라는 서부시대의 현상범 수배 포스터를 거론하면서 그를 법정에 세우기를 원한다고 답했다. 서부활극과 다른 점이 있다면 보안관 자신이 판사와 집행관 노릇을 겸하고 있고,미국 서부의 대평원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의 산악지대와 아랍 어딘가의 사막을 무대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노블 이글'로 명명된 미국의 공격작전이 무고한 민간인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테러용의자들을 추격,체포하고 그들을 숨겨준 나라들에 보복적 제재를 가한다고는 하지만,거기에 머물지 않고 그 곳에 사는 사람들,특히 가난하고 전쟁에 지친 아프가니스탄 주민을 대량으로 살상하는 반인륜적 결과가 수반될 공산이 크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미국에 대한 '얼굴 없는 자들'의 악마적 테러에 공분하면서도 우려를 금치 못하는 대목이다. 이것은 새뮤얼 헌팅턴이 우려한 '문명충돌'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심각한 문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가 어렵다는데 있다. 이번 테러는 정교하게 준비된,그러나 야만적이고 악마적인 대량학살 행위였다. 그래서인지 또는 보복이 두려워서인지,비열한 범인들은 얼굴을 감추고 대의명분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반인륜적 범죄를 과연 누가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 정작 미국조차도 빈 라덴을 '주된 용의자(prime suspect)'라고만 지목했을 뿐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심증은 있으나 명백한 물증은 없다. 미국 정부는 FBI 등에 의한 초유의 대규모 수사를 통해서도 물증에 의한 확증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물론 범인을 추격하는 경찰관에게 추격하는 대상이 범인이라는 확증을 내놓으라는 일일 수도 있고,또 제시한 증거들을 둘러싼 논란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적의 심리전에 말려들거나 수사기밀을 노출시키는 결과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뉴욕타임스와 CNN의 여론조사는 응답자의 75%가 무고한 인명의 희생이 따르더라도 군사행동을 지지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순식간에 최소 6천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 대참사에 흥분한 미국인들의 정서에 비추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우리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어떠했을까. 그러나 왠지 불안하고 갑갑하다. 이렇게 결국 살육의 나날이 시작되도록 할 것인가. NBC가 월스트리트저널과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민 대다수가 '테러응징을 위한 군사공격을 지지하면서도 테러 범인이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아프가니스탄 집권 탈레반에 대미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빈 라덴의 신병을 즉각 인도하라고 촉구하는 성명을 공식 채택하는 등 유엔차원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도 최근의 긍정적인 추이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이처럼 초강대국 미국의 능력을 조롱이라도 하듯 포스트모던 테러가 자행되고,그 결과 세계적 수준에서 새로운 테러전쟁이 진행 중인데도 이에 대한 대처가 극히 미흡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범인이 누군지,누가 범인을 추적 체포해 법정에 세울지,치안판사가 누군지,어디에서 어떻게 진실의 법정을 열어야 할지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난감한 현실이다. 아무튼 이번 테러에 대한 '새로운 전쟁'을 선포한 미국의 결연한 태도로 보아 전쟁이 벌어질 것은 분명하다.추격대 참여를 요청 받은 나라들은 각기 손익계산에 분주하겠지만,결국 추격대가 결성되고 조만간 공격이 개시될 것이다. 우리 정부도 미측의 공식적 지원요청을 받기 전에 이례적으로 전폭적인 지원 및 참여를 약속했다. 그러나 정부는 앞으로 국제 반테러연대에 참가함에 있어 국회와 폭넓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데 세심하고도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국제연대에 참여할 세계 각국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등 공격당할 나라 국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에 외교력을 집중시켜야 할 것이다. joonh@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