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현정기자의 '패션읽기'] 전쟁과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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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패션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유행은 늘 변화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를 거름삼아 자라나고 전쟁은 그 유행경향을 만들어 내는 데 많은 계기들을 제공한다.
복식학자들이 인류 최초의 유행현상으로 간주하고 있는 '미파르티(Mi-parti)'는 중세 십자군 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파르티란 두세 가지 색으로 나뉘어진 옷을 말한다.
바지의 한쪽 다리는 파란색으로 다른 쪽 다리는 빨간색으로 만드는 식이다.
무어인들의 복장에서 유래된 이 옷은 십자군 전쟁 동안 유럽전체에 널리 퍼졌으며 이후 5백여년동안 계속됐다.
지난 세기 일어난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은 특히 여성의 옷차림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1차세계대전 이후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치마폭이 좁아지고 장식 또한 간소화됐다.
여성들이 코르셋에서 해방되고 바지를 자연스럽게 입게 된 것도 이 때 부터다.
두번째 세계 전쟁은 종전 발목을 덮던 치마 길이를 무릎 아래까지 올려 놓았다.
또 여자 옷의 특징인 부드러운 선과 우아함은 사라지고 딱딱한 군복 형태의 밀리터리룩이 새로운 여성복 스타일로 떠올랐다.
90년대 초 패션계를 강타했던 '아르마니 열풍'의 진원지는 걸프전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장식없는 깔끔한 실루엣과 딱딱한 사각 어깨,네개의 포켓이 달린 재킷 등 신사복과 군복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80년대말 여성적이고 사랑스러운 디자인이 유행하자 전문가들은 이 로맨틱 스타일이 향후 10년동안 패션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91년 걸프전이 발발하자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남성적인 아르마니풍 의상이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으로 21세기 첫 전쟁의 기운이 감도는 지금.
패션계에는 또다른 변화가 예견되고 있다.
최근 패션경향의 특징은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컬러를 이용해 화려하고 낭만적인 이미지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신세기를 맞아 밝고 긍정적인 미래를 지향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만약 전쟁이 난다면 유행은 다시 10년전 형태로 돌아갈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다양한 컬러 선택은 줄어들고 카키색과 어두운 색상 만이 남을 것이며 모피와 가죽 등 값비싼 옷감보다는 나일론과 같은 값싸고 실용적인 소재가 인기를 끌 것이라고 한다.
s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