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위원코너] 한국의 위기관리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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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테러사건을 계기로 세계 각국의 위기관리능력이 확연히 드러났다.
당사국인 미국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신속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 돋보였다.
테러 직후 곧바로 증시를 폐장했고, 또 개장하기에 앞서 금리를 내려 증시안정을 위한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
뿐만 아니라 항공 보험 등 테러피해를 입은 산업과 뉴욕시에 대한 긴급지원을 관련부처가 일사불란하게 처리했다.
유럽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도 테러 직후 금리를 신속히 인하했다.
그리고 증시안정을 위해 유동성 공급 확대, 가격제한폭 축소, 휴장 등의 충격완화 조치를 단행했다.
미국과 이들 나라의 국민들은 애국심과 성숙된 시민의식으로 화답했다.
우리는 어떤가.
주변국들의 움직임만 살피다 금리인하 증시개장 등 초기대응에 실패했다.
테러사건 이후 열흘 동안 무려 여섯 차례에 걸친 긴급 경제장관회의를 가졌으나,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은 재탕 삼탕된 조치들로서 새로운게 없었다.
무슨 일인지 최고책임자는 출범 초기의 결연한 의지도 보여 주지 않았다.
부총리제가 부활됐지만 리더십이 결여돼 경제장관마다 위기상황에 대한 인식이 제각각이다.
정치권의 당리당략 싸움, 정책일관성 결여, 이용호 게이트 등으로 정당은 물론 정부당국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국민들의 이기심도 재현됐다.
일부 계층의 달러 사재기로 원화 만이 유일하게 약세를 보였는가 하면, 보유주식을 대거 내다 팔아 주가가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이용호 사건 등 사회일탈행위도 여지없이 발생했다.
마치 위기에 몰리던 김영삼 정부 후반기가 다시 찾아온 듯한 착각을 갖게 한다.
한마디로 우리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은 신뢰를 갖지 못하게 한다.
미국의 테러사건과 마찬가지로 우리 경제는 당분간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와 같은 취약한 위기관리능력으로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 우려된다.
미국 FRB의 앨런 그린스펀 의장은 이번 테러사건 직후 열린 의회청문회에서 "경제가 살아나려면 경제주체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여건(위기관리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야말로 바로 이것이 필요한 때다.
한상춘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