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증후군' 급속 확산 .. 우울한 직장인, 정신진료 급증 등

경기 침체의 그늘이 깊어지면서 사회 전반에 "불황 증후군"이 확산되고 있다. 스트레스로 정신과 병원을 찾는 직장인들이 늘어나는가 하면 가장의 소득에 불안감을 느껴 부업이나 창업전선에 뛰어드는 주부들도 급증하고 있다. 미 테러 참사 이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점(占)집을 찾는 사람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대기업 영업직 간부 이모씨(45). 그는 최근 이유없는 두통과 불면증,체중감소 등에 시달리다 내과를 찾았다. 하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는 의사의 권유로 조심스레 정신과 문을 두드렸다. 전문의가 진단한 이씨의 병명은 '가면(假面)우울증(masked depression)'. 얼굴은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불안감과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신종병이다. 서울 송파구의 마음과 마음 정신건강센터에는 요즘 이같은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직장인들이 하루 평균 6∼7명에 달한다. 이 병원 정혜신 박사는 "과거엔 주부들에게 많이 나타나던 우울증이 요즘 들어서는 실직 등의 공포에 시달리는 남성 직장인에게까지 급속히 번지고 있다"며 "일부 가면우울증 환자 가운데는 맹목적으로 일에 몰입하다가 어느 순간 감당하기 어려운 불안감으로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불황 증후군은 가정주부들에게도 파고들었다. 최근 H백화점이 5명의 주부 모니터 요원을 모집하는데 1백80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이는 IMF 경제위기 시절을 연상케 하는 경쟁률이라는게 백화점측 설명이다. 백화점 관계자는 "지난해만 해도 자기계발 차원에서 지원하는 주부들이 많았으나 최근 들어서는 경제적인 이유로 부업에 나서는 주부들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지난달 26일부터 사흘간 서울산업지원센터가 연 '소자본창업'강좌에도 2백85명이 찾아와 주최측을 깜짝 놀라게 했다. 지난해 창업강좌 때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점집이 다시 북적거리는 것도 불황과 무관하지 않다. 서울 성동구 H철학원엔 요즘 하루 20여명의 손님들이 들어오고 있다. 이 철학원을 운영하는 김모씨(61)는 "테러사태 이후 사회 전반에 심리적인 불안감이 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심지어 미국 교민들의 상담전화도 심심찮게 걸려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라이코스의 사이버 운세 방문객도 하루 평균 1만5천∼2만명에 이른다. "재미로 궁합이나 운세를 보는 젊은이도 있지만 취업길이 얼어붙으면서 진로에 대한 불안감으로 사주를 보는 대학생 네티즌도 많다"는 게 이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거리에 다시 부는 '복고풍' 역시 불황 신드롬의 단면으로 풀이된다. 올 가을 패션계의 화두는 단연 '블랙(검은색)'으로 디자이너들은 1950∼60년대 흑백영화를 연상케 하는 복고풍의 정장을 대거 선보였다. 벼룩시장이나 보세가게에서 고른 듯한 빛바랜 느낌의 '빈티지(vintage)룩' 또한 '돌아온' 패션이다. '어두운 경제상황이 향수어린 빈티지룩과 블랙패션을 낳는 요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조홍래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불황 증후군은 근로 의욕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개인의 소비생활과 기업투자를 위축시켜 진짜 심각한 불황을 초래할 수 있다"며 "경제를 둘러싸고 있는 제반 불확실성을 없애 심리적 불안감을 줄여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