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등의 여지(餘地)

증시가 큰 폭 오르며 풍요로운 추수의 계절을 열었다. 연휴 기간 해외에서 날아든 잇단 호재를 만끽한 것. 지난주 470선을 중심으로 단기 바닥권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이후 지난달 28일과 이날 추석 연휴를 사이에 두고 이틀에 걸쳐 상승세를 보이며 단숨에 500선을 회복, 미국 테러로 인한 쇼크가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일단 강력한 저항선으로 예상됐던 500선을 손쉽게 되찾은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기술적으로 볼 때 최근 1년여간 굳건한 지지선으로 힘을 발휘했고 테러 충격으로 인한 하락갭의 하단 지점인 500선에 도달함으로써 하방경직성을 확보했을뿐 아니라 추가 상승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4일 증시 급등의 주된 요인은 해외증시 안정과 그에 따른 외국인 매수세 유입으로 파악된다. 추석 연휴를 즐기고 있는 사이 미국은 테러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금리를 내리고 재정지출 확대 방침을 밝혔다. 올들어 아홉번째 금리인하를 단행하며 연방기금금리를 지난 62년 7월 이래 39년여중 최저 수준으로 낮췄다. 또 경기 부양을 위해 최대 750억달러 규모의 자금을 풀기로 했다. 여기에 테러로 인해 악화가 불가피하다고 전망됐던 구매관리자협회(NAPM) 제조업, 비제조업지수가 예상보다 호조를 보이며 경기 침체 우려를 덜어냈다. 아울러 세계 최대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시스코 시스템즈가 긍정적인 실적 전망을 내놓으면서 투자 심리에 불을 지폈다. 연휴 기간 축적된 이같은 호재가 한꺼번에 반영되면서 반도체 매출 급감 등 악재는 뒷전으로 물려졌다. 전업종, 대부분 종목이 무차별 강세를 나타냈다. 해외 요인에 민감한 외국인은 지난 5월 24일 이후 최대 규모의 매매를 보이며 상승을 지원했다. 이날 반등을 본격적으로 추세 전환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이틀간의 상승을 기술적 반등 국면으로 파악했을 때 관심은 상승세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에 모아진다. 추가 상승 공간은 넓지 않아 보인다. 먼저 이번 상승의 최대 모멘텀인 가격메리트가 사라짐에 따라 저가 매수를 발판으로 한 상승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세계 경제가 이미 테러 사건 이전에 침체 터널로 진입하며 증시가 하락추세를 타고 있던 점을 감안할 때 자율적인 복원력만으로 테러 발생 직전 지수대인 540선까지 회복을 바라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시각이다. 또 국내 증시에 미치는 영향력이 거의 절대적인 반도체 경기회복 신호가 요원하다. 여타 경제 지표가 간혹 호전을 가리키더라도 반도체 경기가 침체를 지속하는 한 증시 상승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이달말 출시되는 윈도XP에 기대를 걸고 있으나 계절적 효과에 그칠 공산이 크다. 8월 세계 반도체 매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42% 급감한 것으로 집계됐다. 메모리 반도체 256메가 가격이 3달러 밑으로 추락했고 128메가가 1달러선에 근접하는 등 현물가격이 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날 삼성전자는 닷새만에 상승하기는 했으나 종합지수 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해 급등장에서 대장주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 반도체 논란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으나 반등 시기는 내년 2분기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아울러 이번달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기업실적 발표가 번번이 상승의 덜미를 잡겠다. 지난 분기 실적이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반영돼 있다는 게 지배적인 견해지만 테러로 인한 실적 타격과 '바닥 연장'을 고려할 때 여전히 부담이다. 시스코와 같은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도 있겠으나 반대의 경우가 더 많음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목요일 뉴욕 증시에서는 세계 최대 PC제조업체인 델 컴퓨터가 실적 전망치를 내놓는다. 델의 실적전망치는 하향조정이 예상된다. 월요일 장마감후에 경쟁업체인 컴팩은 주당 5센트∼7센트의 손실을 전망, 주당 5센트 이익을 예상한 애널리스트들을 무안케했다. 목요일엔 알코아가 지난 분기 실적을 내놓으며 본격적인 실적 발표 시즌을 알린다. 한경닷컴 유용석기자 ja-j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