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증폭되는 '주식 의결권 제한'] 市場원리 무시...또다른 '족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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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의결권 제한' 조치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정부가 억지춘향식 규제 완화를 추진하다 보니 가공되지 않은 정책 아이디어들까지 남발되고 있다는 지적이 정부.여당 내에서도 제기되는 정도다.
사적 재산권을 침해할 가능성,실효성 여부에 대한 철저한 검증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물론 최근의 경제정책 기조가 시장경제 원리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출자총액 규제완화 문제나 은행법 개정방안은 시비를 부르는 대표적인 사례다.
◇ 실효성도 없는 편법 동원 =재계는 정부가 획기적인 규제완화책으로 내놓은 '은행 소유지분한도 확대와 출자총액제한제 개선책'이 실효성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순자산의 25%를 넘는 한도 초과분에 대해 의결권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출자총액 한도제를 그대로 두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불만부터 제기한다.
은행소유 한도 문제 역시 추가로 보유하는 주식에 의결권을 주지 않는다면 무슨 투자 실익이 있느냐는 게 경제계 반발의 요지다.
4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규제를 안해도 될 것을 굳이 규제하려다 보니 편법에 편법이 더해지는 꼴"이라고 잘라 말했다.
다른 그룹 관계자 역시 "의결권을 주지 않겠다는 것은 규제 수단만 달리한 것이지 기존 규제와 달라진 게 없다"며 정부 방침을 일축했다.
그는 또 "기업이 과거처럼 은행돈을 끌어다 무분별하게 투자하는 것도 아니고 투자의 성공과 실패는 말 그대로 시장이 판단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 의결권 제한 실태 =현재 각종 법률에서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대목은 대부분이 자산 운용의 공공성을 높이거나 독점 금지, 선량한 피해자 보호 등 공적 이익이 개인 재산권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극소수 사례에 국한된다.
30대 기업집단 소속의 금융회사가 고객의 돈으로 자기 계열사 주식을 매입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을 금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명분이 있을 때만 의결권을 부분적으로 제한할 수 있을 뿐 가급적 다른 방안을 찾는 것이 옳다는게 전문가들의 권고다.
◇ 재산권 침해 논란 =여당 내부에서조차 법적 타당성 논란이 일고 있다.
여당 고위 인사는 공정위의 출자총액제한제 개선 방안과 관련, "이남기 위원장의 사견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김만제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도 "주주권이 있는 상황에서 의결권 제한 발상이 나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위헌 소지를 검토해 볼 것"이라고 말해 정부 내부에서조차 사전 조율 없이 성급하게 발표된 방침임을 시인했다.
◇ 편법을 조장한다 =정부의 새로운 규제가 기업들의 상응하는 편법을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부가 새로운 규제를 들고 나오면 기업은 이를 피할 또다른 편법을 연구하게 되고 이런 과정이 반복된 끝에 각종 추가적인 규제들이 그물망처럼 촘촘해지는 소위 '규제의 함정'에 빠질 것이라는 지적들이다.
이인실 한국경제연구원 금융재정연구센터장은 "소유한 만큼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게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이라며 "각종 규제를 원천적으로 철폐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