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금융읽기] 마진콜과 3低, 한국경제

미국 테러사건 이후 세계 주가가 기조적인 하락세를 보이면서 각종 펀드들이 일제히 마진콜(margin call)을 당하고 있다. 마진콜이란 각종 펀드들이 주가하락으로 증거금에 일정수준 이상 부족현상이 발생했을 경우 이를 보전하라는 요구를 말한다. 최후의 통첩인 셈이다. 현재 국제간 자금흐름의 약 80%를 주도하고 있는 헤지펀드와 같은 각종 펀드들은 자신들의 고객인 투자자들의 신뢰를 확보하고 투자실적 배당을 최대한도로 높이는 것을 생명처럼 여기고 있다. 이에 따라 펀드매니저들은 △투자이익의 극대화 △비용의 최소화 △위험의 민감화라는 3대 원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자신의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만약 투자실적을 내지 못하거나 투자자로부터 신뢰를 상실할 경우 시장으로부터 퇴출당해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최근처럼 각종 펀드들이 마진콜을 당할 때에는 증거금을 보전해야 시장로부터 신뢰를 유지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국제적으로 신용경색(credit crunch)이 발생되고 국제간 자금흐름과 국제외환시장에 상당한 변화가 초래된다. 지난 98년 8월 러시아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 당시에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를 비롯한 각종 펀드들이 마진콜을 당했다. 이때에도 국제적인 신용경색 현상이 나타나면서 세계경제는 1929년에 이어 디플레 국면이 우려됐다. 또 국제외환시장에서는 엔화강세가 초래됐다. 투자손실분과 증거금 부족분을 보전할 대상자금으로 엔화 자금이 가장 저렴했기 때문에 엔화 수요가 늘어난데 따른 것이었다. 반면 한국과 같은 신흥시장은 이미 97년 외환위기를 당하면서 투자자금이 이탈돼 자금회수 가능성이 적었다. 국제상품시장에서는 투기적 자금유입이 줄어들면서 유가는 배럴당 10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 다행히 같은해 9월 29일 이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세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하하고 일본의 제로금리정책,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인하가 떠받치면서 충분한 유동성이 공급됐다. 이에 따라 신용경색이 해소되고 세계증시의 유동성 장세 연출과 함께 경기도 회복국면에 접어들 수 있었다. 결국 각종 펀드들이 마진콜을 당한 것을 계기로 엔화에 대한 달러화 약세,국제저금리 기조,저유가라는 이른바 3저 현상이 한동안 형성됐다. 이는 한국과 같은 금융위기국가들이 조기에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를 회복하는데 결정적인 힘이 됐다. 이번에는 어떻게 될까. 최근 들어 각종 펀드들이 마진콜을 당하면서 가장 먼저 우려되는 점이 자금흡수에 따른 국제신용경색 현상이다. 다행히 이 점과 관련,올들어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세계 각국들이 금리를 내려온데다 미국의 테러사건을 계기로 금리가 추가인하됨으로써 전체적인 유동성면에서는 문제가 없는 상태다. 다시 말해 국제신용경색에 따른 세계증시와 경기의 추가 침체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다만 국제 자금흐름에 있어서는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이번에는 투자손실분과 증거금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한국과 같은 신흥시장에 투자한 자금을 우선적인 회수대상으로 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같은 신흥시장에서는 외국인자금 이탈에 따라 통화가치와 주가의 약세가 예상된다. 다행히 신흥시장에 속한 국가들이 97년 당시에 비해 월등히 많은 외환보유고를 확보해 놓았기 때문에 외국자금 이탈과 통화가치 하락간의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우려는 별로 없다. 국제상품시장에서는 이번에도 저유가 국면이 진전될 가능성이 높다. 통상적으로 9월 이후에는 북반구 지역의 원유성수기인 동절기를 맞아 투기적인 수요로 유가가 상승하는 것이 보통이나 이번에는 각종 펀드들이 마진콜을 당해 그럴 여지는 적다. 오히려 세계경기 침체로 원유수요가 감소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에도 세계 각국들이 가격변수를 떠받치기 위해 인위적인 시장개입 혹은 시장담합에만 나서지 않는다면 98년 9월 이후처럼 뚜렷하지 않지만 3저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과거 3저의 혜택을 누려온 우리 경제로 봐서는 다행한 일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혜택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불행히도 외환위기 이후 일부 '있는 계층'들의 이기주의적 행동,집권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심화되고 있는 정치권의 고질적 당리당략 싸움,뒷북치는 정책대응 등 총체적인 레임덕 현상으로 3저의 혜택을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은 집권초기였던 98년 9월이후에 비해서는 훨씬 약화된 상태다. 이는 앞으로 한국경제가 현 상태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또하나의 요인이다.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