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현장] 휴대폰생산 세계1위 마산 '노키아티엠씨'

세계경제의 견인차로 불리웠던 IT(정보기술)업계가 총체적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하지만 경남 마산자유무역지역내 노키아티엠씨의 경우는 좀 다르다. 세계적 휴대폰 생산업체인 노키아의 한국생산법인인 노키아티엠씨. 노사갈등 등으로 한때 회사가 매우 어려운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정상궤도에 들어섰다. "3년 연속 국내 외국기업 매출 1위""오는 11월 중순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최초로 누적 생산대수 1억대 돌파"등의 영예가 이를 잘 말해준다. 이 회사는 올해에도 전년대비 20% 정도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추석 연휴 직후인 5일에도 노키아티엠씨는 완전가동"상태였다. GSM(유럽 디지털 휴대폰)생산 라인에서는 직원들의 손놀림이 바쁘게 이어졌다. 부품 박스를 뜯어 조립하고 불량여부를 검사하고 완제품을 포장하는 생산과정이 물흐르듯 했다. 바로 옆 CDMA(코드분할 다중접속)등 나머지 7개 라인도 마찬가지. 종업원 8백명,1만3천평 규모의 8개 라인중 어느 한군데 활기 넘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정문과 자재창고 앞에서는 수출 상품을 싣기 위한 차량들의 움직임이 분주해 불황이라는 말은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릴 정도다. 노키아티엠씨는 노키아의 14개 해외공장중 첫 손에 꼽히는 우량공장이다. 지난 85년 3백여대를 첫 생산한 이래 규모면에서 세계 1위에 우뚝 선 것은 물론 질적인 면에서도 지난 94년 이후 단 한건의 클레임도 들어오지 않았을 정도로 우수함을 자랑한다. 실상 지난 98년 노키아가 모토로라를 누르고 휴대폰 업계 세계 1위로 등극하는데에는 노키아티엠씨 공장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노키아티엠씨가 주목받는 이유는 또 있다. 최악의 노사갈등에서 최고의 노사관계로 대전환을 이룩한 기업이라는 점이다. 사실 노키아티엠씨의 초기는 문제가 많았다. 외국인 투자자와 한국 경영진간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됐고 경영진의 일방적인 회사 운영으로 근로자들의 불신까지 가세,경영 전반에 누수현상이 빚어졌다. 품질 문제로 수출 물량이 반품되는 경우도 잦아 한때는 부도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86년 이재욱 현 회장이 취임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우전자 출신의 이 회장은 노키아티엠씨 출범 20개월만에 4번째로 사령탑을 맡은 인물. 이 회장은 한국식 "신바람 경영"을 내세워 우선 직원들과의 대화에 나섰다. 낮에는 생산라인에서 같이 일했고 식사도 함께 했다. 저녁에는 회식자리에서 속내를 교환했다. 품질관리를 위해 2백50여개 협력업체에 대해서도 당근과 채찍 전략을 적절히 구사했다. 물품 대금은 15일 이내에 반드시 현금으로 지급했다. 덕분에 "노키아와 거래하면 부자가 된다"는 말까지 나왔다. 반면 제품에 하자가 있으면 거래중단 등 가혹한 대가를 각오해야만 했다. 드디어 취임 1년만인 87년부터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났다. 사상 처음으로 연 10만대 수출을 달성했고 작은 규모지만 흑자도 났다. "이 회장,믿을만한 사람이구나"라는 인식이 퍼져 나갔다. 직원들은 생산성 향상으로 화답했다. 공정기술팀은 주파수 교란을 막는 통신차단 박스를 자체 개발했다. 개발팀은 휴대폰의 나사조임 속도를 15초에서 5초로 줄이는 등 초고속 생산시스템을 구축했다. 그 결과 생산공정이 짧아진 것은 물론 연간 38억원의 비용절감 효과도 거둘 수 있었다. 이수열 근로자협의회 대표는 "팀별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제안이 연간 수십건씩 쏟아져 생산라인에 곧바로 적용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노키아티엠씨는 지난 98년부터 3년 연속 국내 외국기업중 매출 1위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24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99년 14억달러에 비해 71% 증가한 것. 이 회사는 전량 수출업체여서 매출이 곧 수출 실적이다. 이 회장은 "미국테러사건 세계경기침체 등 경영여건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으나 취임 당시 세웠던 "세계 최고를 지향한다"는 방침만큼은 반드시 지켜나갈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마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