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글로벌리즘 변화와 일본의 길

'9·11테러'를 계기로 미국 경제는 버블 요인이 제거되고 건전한 모습을 되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IT(정보기술)의 거품붕괴로 미국경제의 불황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견해가 있었지만 저축률이 올라가고 경상수지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올 3·4분기와 4·4분기는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경기후퇴의 충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이는 9·11테러와 관계없이 당초 예상된 것이었다. 테러리즘은 글로벌리즘의 그림자중 가장 큰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루빈 전 미국 재무장관은 언젠가 "글로벌리즘이 역류한다면 그것은 테러리즘에 의한 것일 것"이라고 예견한 적이 있다. 이번 테러는 그의 예언이 적중했음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테러리스트들은 인터넷을 이용해 선진국의 은행계좌로 자금을 국제적으로 이동시키고,금융파생상품도 자유자재로 이용했다. 이는 반(反)글로벌주의가 스스로 글로벌화돼 글로벌리즘을 공격한 것과 마찬가지다. 대단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치 외교 경제등 모든 면에서 테러리스트들을 격퇴할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돈의 이동을 압박하면서 돈세탁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금융은 원래 '익명'을 좋아하게 돼 있다. 게다가 테러리스트들은 이름을 감추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의 기술혁신이 테러리스트들을 도와주고 있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흐름이 거꾸로 될 것인가, 일부 수정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스피드가 둔화되는데 머물 것인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미국이라는 한 국가에 집중됐던 경제의 글로벌리즘은 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IT버블의 붕괴 역시 한가지 징후였는지 모르겠지만 테러가 발생한 9월11일을 경계로 세계는 분명히 달라졌다. 역사적 전환점이었다고 본다. 앞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축소지향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상품의 이동에는 감시가 심해질 것이다. 미국은 루빈, 그린스펀(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시대에서 파월 국무장관과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시대로 넘어갔다. 경제팀의 영향력이 떨어지고 군사 외교가 정책결정 과정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됐다. 안보 주도의 정책이 앞에서 끌고 경제정책은 뒤에서 끌려가게 됐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아무리 글로벌 자본주의와 시장원리주의를 비판하더라도 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원리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정된 '시장', 수정된 '글로벌리즘' 가운데서 최선의 선택을 찾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일본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다른 나라들의 의견을 물어 볼 것도 없이 경제의 재건이다. 글로벌화가 변질된다는 의미에서 일본이 눈을 떼서는 안될 지역이 아시아다. 아시아는 특히 1990년대 이후 세계의 공장, 생산기지로 자리매김했으며 IT부문에서는 더 큰 중요성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장은 미국에 상당부분을 의존해 왔다. 아시아야말로 글로벌화라는 시대적 조류에 가장 빨리 편승했던 것이다. IT버블이 꺼지고 미국의 소비급감으로 수출에 급제동이 걸리고, 게다가 이번 테러사건의 충격이 겹치면서 아시아는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를 낳고 또 다른 성공의 씨앗이 된다. 일본은 아시아와의 협조를 위해 시장을 열어야 한다. 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해 농업을 지키고 비교열위로 굴러 떨어진 건설·금융회사 및 중소기업을 보호해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은 일본을 세계의 고아,아시아의 이단자로 만들 뿐이다. 정리=양승득 도쿄 특파원 yangsd@hankyung.com ............................................................................. ◇이 글은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재무성 재무관(현 게이오대 교수)이 닛케이비즈니스 최신호에 실은 기고문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