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하이닉스 중국매각 안된다 .. 안세영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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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미국경제가 휘청거릴 때 엔고를 배경으로 일본기업이 닥치는 대로 미국(!)을 사들였다.
미국의 대표적 영화사,상징적 빌딩과 골프장이 일본인의 손에 들어갔다.
그런데 진짜 미국을 놀라게 한 것은 항공,반도체관련 기업이 외국인에게 넘어간다는 것이다.
이의 좋은 예가 중국항공기술수출입공사의 미 항공기 부품업체인 맘코(Mamco)사 인수기도다.
이같은 외국인의 핵심기업 먹어치우기를 놓고 미국에선 의견이 둘로 갈렸다.
맘코사가 중국에 넘어가더라도 미국땅에서 기업활동을 하고 일자리를 제공하기에 미국인소유기업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 자유주의자의 주장이다.
그러나 로라 타이슨을 비롯한 개입론자는 아무리 외국인투자 자유화도 좋지만 미국경쟁력의 원천인 첨단분야는 예외라고 강하게 반발한다.
맘코사의 중국매각은 항공기술 유출의 부메랑효과로 미국 항공산업을 위협할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미국정부는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를 구성해 하이테크 분야에서 몇건의 외국인투자를 무산시켰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당시 클린턴 대통령의 인선이다.
기라성 같은 자유주의자를 제치고 비주류 경제학자인 로라 타이슨을 대통령경제보좌관에 앉힌 것이다.
후문에 의하면 '국익에 대한 현실감각이 없는 자유주의자는 대학에서 강의나 하든지,외국에 자유무역 공부나 시키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지금 바로 우리가 과거 미국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외자를 유치해 외환위기를 넘긴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제 핵심기업마저 팔아 넘긴다는 비판이 고개를 들고 있다.
당장의 관심은 대우자동차와 하이닉스반도체 매각이다.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외국자본의 가장 큰 병폐는 국내시장 독과점과 기술마찰이다.
그러나 대우자동차 매각에 대해선 이러한 비판이 공허하게 들린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세계적 자동차메이커가 된 현대자동차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GM으로선 상당한 선진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이닉스 중국매각은 GM의 경우와 전혀 다른 외국인투자효과가 우려된다.
그 이유는 반도체산업이야 말로 한국이 그나마 절대비교우위를 가진 거의 유일한 산업이라는 점과 '왜 하필이면 가까운 시일내 강력한 경쟁상대가 될 중국이냐'는 두가지다.
물론 혹자는 반도체산업의 기술수명주기가 원체 빨라 기술유출 효과가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과 골칫거리 부실기업을 정리하는데 뾰족한 대안이 없다고 반박한다.
우선 첫번째 주장은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중국의 기술력을 과소평가하고,학습효과가 큰 반도체산업에선 연구·생산활동을 통해 연구인력,생산인력 등에 체화(human-embodied)된 기술의 유출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술유출 못지 않게 심각하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지난 반도체 빅딜 때 관련 종사자의 동요로 상당한 기술이 외국경쟁사에 넘어가 오늘날 대만기업이 우리를 바짝 좇는 힘이 되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다음으로 대안부재론은 채권회수가 최대현안인 금융측면에서만 본 편협한 시각이다.
지난 외환위기 이후 부실기업정리에 쏟아지는 비판 중 하나는 산업관련 부처와 전문가의 의견이 허술히 다루어진 가운데 너무 금융부처와 채권금융기관 중심으로 이 문제를 다루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도체산업이 우리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하이닉스 중국매각은 채권금융기관 뿐만 아니라 정부내 금융·산업부처, 그리고 반도체산업계의 의견이 충분히 수렴된 전략적 산업정책의 틀 속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특히 하이닉스와 정부 스스로도 당장은 고통스러우나 구조조정을 위해 필요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자문해 봐야 한다.
국가적으로 바람직한 대안이지만 정치적 부담과 고통이 따르는 선택은 대안의 범위에서 제외시키고,눈앞의 금융과 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서운 경쟁자인 중국기업에 팔아 넘긴다면 정부는 지난 빅딜에 이어 두번째로 우리 반도체산업을 잘못 뒤흔든다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syahn@ccs.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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