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전선 갈수록 암울...업계 초비상] 값인하..선적연기..속타는 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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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 같으면 지금쯤 수출 상품의 납기를 맞추느라 직원들이 밤을 새워야 하지만 미국의 테러사태 이후 주문량이 급감해 평상시처럼 작업하고 있다"
조립식 모형완구를 제작해 미국에 수출하는 모인토이즈 이효석 사장의 얘기다.
이 사장은 "작년에는 50만달러 어치를 수출했는데 크리스마스 연말특수의 실종으로 올해는 30만달러도 불투명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의류 잡화 등을 국내 중소업체들로부터 일괄 매입해 이를 미국에 수출하는 바잉오피스 한국리엔풍주식회사의 박승준 상무는 "미국의 연말특수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마저도 물거품이 됐다"며 "올해 매출은 3억5천만달러 정도로 지난해 5억달러에 크게 못 미칠 것 같다"고 말했다.
세계 소비중심지인 미국에서 그것도 시기적으로 크리스마스 연말 특수를 앞둔 시점에서 테러사태가 발생해 수출업계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전통적 특수가 사라져 수출 부진을 만회하기는 커녕 당초 예상보다 더 큰 폭으로 감소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 크리스마스 연말특수 실종 =머플러 숄 핸드백 등을 생산해 95% 이상을 미국에 수출해온 써니통상은 최근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미국으로 선적할 예정이던 물량 30억원 어치의 선적을 바이어측의 요청으로 한달간 늦췄다.
이 회사 나세우 사장은 "일부 바이어의 경우 제조 원가를 물어주겠다면서 계약 자체의 파기를 요구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크리스마스 특수가 없어진 것도 문제이지만 그 여파로 내년 봄 이후 신규 물량이 줄지 않을지가 더 큰 걱정"이라는 것.
컴퓨터 업계도 마찬가지다.
중견 전자업체 해외마케팅 담당자는 "PC 1만대가 테러로 선적이 중단된 상태"라며 "선적 중단이 장기화되면 PC 수출에 큰 타격을 입게 돼 요즘 잠이 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삼보컴퓨터 관계자도 "9월까지의 대미수출 물량은 계약이 돼 있지만 추가 물량 협의가 무기한 연기된 상태"라고 털어놓았다.
계약 취소나 선적 연기 이외에 이미 계약이 끝난 물량에 대해 바이어가 무리하게 가격을 깎아줄 것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실제로 니트 의류를 생산하는 M사는 최근 바이어측의 요구에 따라 제품 단가를 10∼20% 정도 낮춰 수출했다.
이 회사 수출담당 임원은 "바이어들이 1차적으로 물건 인수를 거부하거나 종전에는 통용되던 사항까지 꼬집어 노골적으로 가격 깎기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에서 GAP 브랜드로 캐주얼의류 등을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납품하는 태평양물산의 박양순 이사도 "미국 소매업체들이 값싼 제품을 주로 찾는 한편 기존 제품 가격도 인하해 달라고 요청해 5% 가량 가격을 내렸다"고 말했다.
◇ 뾰족한 대책이 없다 =문제는 미국의 소비가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
미국 상무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의 소매 매출은 전달에 비해 2.4%나 줄었다.
미국 소매.무역협회는 추수감사절 성탄절 대목의 소매 판매가 지난해에 비해 2.5∼3% 증가에 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지난해 증가율 5.3%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협회 관계자는 "현 상태대로 소비가 줄어들면 연말 대목은 5년만에 가장 낮은 신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뾰족한 대책을 세우기 어렵다는게 정부나 업계의 고민이다.
무역협회 김규식 차장은 "수출 기업들이 자금난을 겪지 않도록 금융 지원을 하는 것 외에 이렇다 할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오영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사장은 "미국의 민간 소비가 되살아날 때까지는 새로운 바이어를 발굴하는 것이 수출 활력을 회복하는 첩경"이라며 "수출 대상을 다변화하고 원가절감 등의 비상 수단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