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갑사.동학사'] 낙엽들도 반기는 가을山寺 가는길

올해는 단풍 흉년. 긴 가뭄에 지친 나뭇잎이 형편없이 말려 타들어 가고 있다. 남으로 갈수록 황금물결 넘실대는 들녘 분위기와 뚜렷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더이상의 성장(盛裝)한 가을산 맞이는 내년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낙엽은 서둘러 그 빈자리를 채워준다. 생명순환의 한 고리를 하늘하늘 매듭지으며 무심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붙잡는다. 계룡산을 찾는다. 활(금강)시위에 얹힌 화살대의 깃부분, 수태극산태극의 명당이란 풍수설에 따라 배역과 천도후보지로 두 왕조초기 시선이 엇갈렸던 지역의 높지 않은 봉우리. 그 서쪽 기슭의 사찰 갑사.동학사를 잇는 산길의 낙엽을 밟는다. 이상보의 수필 '갑사로 가는 길'을 거슬러 갑사에서 동학사로 넘는 길을 택한다. 세시간여의 팍팍한 오르내림에도 남달리 개운한 뒷맛을 남기는 하루 산행길이다. 갑사 들머리의 사하촌은 5일장 분위기. 갓 익은 감이며 산채가 수북한 좌판대열, 밀고 당기는 흥정소리가 괜히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매표소를 지나 오른쪽으로 놓인 흙길이 차분하다. 산죽이며 큰 나무가 터널을 이뤄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가장 먼저 마주하는 철당간지주(보물 256호)가 우뚝하다.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반야용선의 돛대를 형상화한 구조물. 33천의 천상세계를 나타내기 위해 33개의 마디로 만든 것으로 전하는데 지금은 24개의 마디만 남아 있다. 조금 위 부도(보물 257호)가 눈길을 끄는 대적전의 분위기가 단아하다. 공우탑(功牛塔) 앞 아기자기한 맛의 계곡에 놓인 짧은 다리를 건너면 백제 때(420년) 고구려승 아도화상이 처음 세운 갑사 본찰. 삼신불괘불탱화(국보 298호), 선조 2년간 월인석보판본(보물 582호), 동종(보물 478호)과 임진왜란 때의 승병장 영규대사의 영정 등이 모셔져 있다. 이어지는 길은 내내 오르막. 다듬어지지 않은 돌들이 계단처럼 놓여 있지만 걸음걸음이 그리 쉽지는 않다. 물이 말라버린 용문폭포에서 한숨 돌리고, 천진보탑이 있는 신흥암을 향해 오른다. '춘마곡 추갑사'라지만 올해의 '추갑사'는 여전히 신통치 않다. 풍만한 여인의 몸매를 닮은 고목의 모습이 신기하고 간간이 마주치는 주부, 가족단위 산행객이 반갑다. 금잔디고개는 산행의 중간점. 삼불봉으로 갈라지는 지점까지의 짧은 길 아래사면에 낙엽이 두텁게 깔려 있다. 이후 조금 급한 내리막길에서 남매탑이라고 불리는 청량사지5층(국보 1284호) 7층석탑(국보 1285호)을 만난다. 호랑이로 인해 인연을 맺게 된 당승 상원대사와 상주 처녀의 지순한 사랑이 배인 남매탑에서의 느낌을 그렸던 이상보의 수필을 기억속에서 찬찬히 음미한다. 날이 흐려 계룡8경의 제8경인 '남매탑 명월'을 남겨 두어야 하는게 아쉽다. 동학사에 가까워지면서 리드미컬한 법고소리가 점점 커진다. 저녁예불을 알리는 신호. 사람들이 몰려 있는 누각위 어둠에 묻힌 비구니스님의 손놀림이 바람에 날린다. 짧지 않은 산행에 지친 몸과 마음이 화들짝 놀라 깨어난다. 법당마다 가지런히 열어 놓은 사각형 창호를 통해 쏟아지는 '황금빛 자비'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공주=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