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패망 '秘史'] (25) '대우사람들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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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맨들에겐 그룹패망이 또 다른 시련의 시작이었다.
꿈은 산산조각났고 희망은 사라져 갔다.
가치관의 혼란이 앞서 찾아왔고 뒤이어 냉혹한 현실이 다가왔다.
불패신화의 주인공 김우중 회장은 훌쩍 떠나버렸다.
사장들은 줄줄이 재판정에 섰고 임직원들은 상심을 보듬고 흩어졌다.
여론도 대우에 등을 돌렸다.
앞만 보고 뛰었기에 좌절은 더욱 컸다.
대우에 몸담았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람들의 이상한 눈길을 받아야 했다.
10만 대우인이 겪었던 고통은 하나하나가 긴 소설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상처도 조금씩은 아물어 가고 있다.
일부 계열사이긴 하지만 '대우'라는 이름을 다시 일으키고 있고 소모임이나마 새로운 만남의 장도 열리고 있다.
대우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은 30여명에 달한다.
(주)대우 강병호 전 사장, 대우자동차 김태구 전 총괄 사장, (주)대우 이상훈 전 전무는 아직도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주)대우 장병주 사장은 위암 수술여파로 건강이 급속히 악화돼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구속된 상태로 1심 재판을 받았던 대우전자 전주범 전 사장도 보석으로 나왔다.
대우중공업 신영균 추호석 전 사장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불구속 상태로 항소심을 받고 있다.
이들 모두는 분식 회계와 외화 도피로 범죄자가 되어 있다.
청춘을 바치고 열심히 일한,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는 부도를 막느라 허겁지겁 내달린 결과였다.
재판 과정에서 이들은 엄존했던 현실과 냉엄한 법리 사이의 심연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이들은 영국 런던에 있는 대우 비밀계좌인 BFC에 수출대금 수조원을 입금한 탓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재산국외 도피 혐의로 1심에서 중형을 선고 받았다.
(주)대우의 전 현직 임원 7명은 수출대금 미회수 등의 수법으로 2백1억달러를 해외로 유출한 혐의로 총 26조4천1백80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수만명 종업원을 이끌면서 세계를 무대로 브랜드를 팔아왔던 이들이 졸지에 외화도피범이며 사기꾼으로 낙인찍힌 순간이었다.
본사 지급보증으로 해외법인이 차입한 자금을 상환하기 위한 자금이었다고 주장해 보지만 법정은 등을 돌렸다.
책임 소재와 형평성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다.
운도 나빴다.
하필 대우가 망하는 시점에 사장을 맡았던 것이 불찰이었다.
어떤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그 자리에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유유히 빠져 나갔다.
(주)대우 장병주 전 사장은 회장을 대신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였다.
김 회장의 최측근으로, 대우 몰락 과정에서 끝까지 발버둥친 그였기에 회한 또한 남달랐다.
취재팀이 지난 7월 서울구치소로 장 사장을 면회갔을 때, 그는 "살릴 기회가 몇차례 있었는데…"라는 말을 되풀이 했다.
얼굴엔 후회가 가득했다.
대우의 기업가치에 대한 미련 또한 컸다.
그는 "대우의 공(功)도 있고 과(過)도 있다. 김 회장을 파렴치범으로 모는 것은 잘못"이라며 그의 상관을 옹호했다.
그는 "시간이 흐르면 진실과 거짓이 만천하에 밝혀질 것"이라며 한평 감방으로 돌아갔다.
피고인들 중엔 대우가 자랑하는 런던스쿨 인맥이 많은 점도 이색적이다.
강병호 추호석 사장, 이상훈 전무.
한 때는 다양한 금융 수완을 발휘하며 세계경영의 병참기지 역할을 수행했지만, 지금은 바로 그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추호석 사장은 김우중 회장 비서출신으로 (주)대우 전무 시절 대우중공업 사장으로 발탁돼 화제를 모았었다.
추 사장은 변호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책임 범위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는 주장을 끝까지 지켜 검찰조차 당혹해할 정도였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으면서도 추 사장은 검색 엔진 벤처회사인 코리아와이즈넛의 전문 경영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강병호 사장은 성경을 읽으면서 수감생활을 이겨내고 있다고 주위 사람들은 전했다.
누구보다 회장의 뜻을 묵묵히 따랐던 김태구 대우자동차 전 총괄 사장은 질풍노도처럼 세계로 뻗어나갔던 자동차 사업을 중간에 접게 된 점을 애통해 하고 있다.
구속되거나 실형을 언도받진 않았지만 김 회장을 도와 대우를 이끌었던 다른 경영인들도 마음이 편할 리는 없다.
경기고 동문으로 수십년동안 김우중 회장과 동고동락했던 (주)대우 이경훈 전 회장은 "후배들이 겪는 고통을 보면 정말 가슴아프다"고 말한다.
미국 중국 등 해외시장 전문가인 이 회장은 서울대 국제지역원 초빙교수로 강단에 서는 것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고 있다.
또 효성 사외이사로서 경영 노하우를 전하고 있다.
(주)대우 서형석 전 회장은 공식 직함 없이 조용히 세월만 보내고 있다.
이들 원로들에 대해서는 김 회장의 독단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대우맨 중에는 그룹 전체가 그토록 무기력하게 쓰러진 데는 김 회장은 물론 측근들이 상황을 잘못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대우가 해체될 때 구조조정본부를 이끌었던 정주호 전 사장은 대우 몰락 직후인 99년 12월 대우자동차 사장직을 맡아 10개월동안 일선 경영인으로 활동했다.
구설수도 많았다.
대우가 망하기 직전에 대우를 떠난 사장들은 지금도 기업경영 일선에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김우중 회장의 경기고 2년 후배로 대우그룹 총괄 회장을 지냈던 윤영석씨는 98년 한국중공업 사장으로 발탁됐고 한국중공업이 두산에 매각된 이후에도 회사를 그대로 이끌고 있다.
'탱크주의' 모델로 유명한 배순훈 전 대우전자 회장은 98년초 현 정부 초대 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한 후, 현재는 리눅스원 회장직을 맡고 있다.
배 회장은 대우가 패망한 직후 김 회장을 신랄하게 비판해 골수 대우맨들로부터 격분을 자아내기도 했다.
"김 회장은 독재경영을 해왔다. 급성장할 때는 효율적이지만 세계 경제흐름이 바뀐 마당에는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 성공한 사람은 성공사례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주변 참모들은 자신이 없어 반대하기 어렵다"
배 회장은 이에 앞선 98년말 대우전자와 삼성차간 빅딜을 비판해 장관 취임 10개월만에 중도하차하기도 했다.
배 회장이, 빅딜을 실패로 몰아갔던 대우전자의 부실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답변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대우패망으로 동반 추락한 사람들이 대우맨 만은 아니다.
거래기업들은 물론이고 특히 대우분식회계와 관련해 대우 감사인이었던 공인회계사들은 재판정에 서있다.
산동회계법인은 7백명이던 직원이 모두 공중분해됐고 간판만 남아 있다.
일부 파트너들은 민사는 물론 형사재판까지 받고 있다.
전문가로서의 사회적 지위는 망가졌다.
젊은 대우맨들은 요즘 "나 여기 있소"(hereiam.co.kr)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 지나간 역사의 파편들을 주워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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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취재팀=정규재 경제부장(팀장) 오형규 이익원 최명수 조일훈 김용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