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여성감독

국정홍보처 산하 국립 영상간행물제작소가 생긴 이래 처음 5급 여성감독이 탄생했대서 화제다. 영상물 제작부문의 여성 파워 증대는 세계적인 추세다. '스위티' '내 책상 위의 천사'에 이어 93년 '피아노'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호주감독 제인 캠피온은 물론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 여성감독의 활약상도 만만치 않다. '가을날의 동화' '유리의 성'을 연출한 장완정 감독(홍콩)의 솜씨는 유명하거니와 지난해 칸영화제에선 이란의 사미라 마흐말바프(20)가 이란 오지 쿠르드족 이야기를 그린 '흑판'으로 심사위원 특별상을 차지했다. 또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선 인도의 미라 네어가 결혼식 전에 벌어지는 가족간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몬순 웨딩'으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국내 상황도 마찬가지다. 55년 '미망인'을 만든 박남옥 감독 이후 근근이 맥을 잇던 여성감독이 90년대 말부터 급증했다. 최근엔 상업영화에도 진출, 정재은 감독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여고 졸업생들의 꿈과 갈등을 그린 '고양이를 부탁해',임순례 감독이 밤무대 밴드의 이야기를 다룬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내놓았고, 이미연(버스,정류장) 박찬옥(질투는 나의 힘)감독 등도 충무로에 출사표를 던졌다. 여성감독의 영화는 국적에 관계없이 사실적이고 섬세하다. 남성들이 거창한 주제에 관심을 쏟는 반면 여성들은 사람의 심리 혹은 작은 일상에 주목한다. 불완전한 여자 주인공이 도덕이나 관습, 성적 억압 등을 극복하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 천착하는 제인 캠피온처럼 남성이 모르는 여성의 정신적 갈등을 담아내거나 혹은 사회 소수집단의 문제를 치밀하게 묘사해낸다. 영상간행물제작소에서 여성을 5급에 발탁한 것도 여성감독의 이런 꼼꼼함을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상업영화 관객의 여성감독에 대한 반응은 차갑다. '고양이를 부탁해'등의 흥행이 저조한 게 그것이다. 여성파워가 거세다는 영화계에서 여성감독이 만든 작품은 가라앉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