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인 탐구] 윌리엄 포드 Jr. <포드車 신임 CEO>..구원 나서

윌리엄 클레이 포드 주니어(44). 2년 전인 지난 99년 공장 폭발사고 직후 회장직에 취임할 때 그의 변(辯)은 간단했다. "포드자동차의 종업원들은 모두 한 가족"이므로 대주주도 책임있게 경영일선에 참여한다는 설명이었다. 지난달 30일 최고경영자(CEO)직을 거머쥐며 경영권을 완전 장악하면서 내뱉은 첫마디도 '가족'이었다. "가족 같은 종업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 창업자인 헨리 포드의 증손자인 그는 큰아버지인 헨리 포드 주니어에 이어 포드자동차의 경영권을 잡은 세번째 포드가 됐다. 그는 경영권을 잡을 목적으로 자크 나세르 전임 CEO를 몰아냈다는 시각을 경계한다. "CEO직을 맡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늘에 맹세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직책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미국에서 두번째로 큰 자동차회사인 포드의 경영이 급격히 어려워지자 대주주인 포드가문에서 자신을 '구원투수'로 보냈다는 해명이다. 미국기업 창업주의 후손들은 지분도 적을뿐더러 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예가 거의 없다. 그런 측면에서 포드는 매우 독특한 회사다. 주식을 의결권이 있는 주식과 없는 주식으로 나눠 놓고 포드 가문에서 의결권이 있는 주식의 40% 가량을 가지고 있다. 경영자를 선임하는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포드가문은 미국에서 마지막 남은 '기업귀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번 윌리엄 포드 주니어의 CEO 취임은 황태자의 등극인 셈이다. 애칭인 '빌'로 불러주기를 좋아하는 그는 매우 소탈하고 유머가 넘친다. 하지만 지난달 미시간주 디어본 본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선 시종일관 단호한 어조였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계획이나 어떻게 세계를 바꿔 놓겠다는 등의 혁명적인 구상을 얘기할 때가 아니다"고 못박으며 "지금은 근본으로 돌아가(back to the basics) 핵심사업을 다시 정립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의 앞에 놓인 과제는 한둘이 아니다. 우선 떨어진 사기 진작. 종업원들은 경영위축으로 급여삭감과 해고를 우려하고 있다. 딜러 하청업체 고객들도 대부분 등을 돌리고 있다. 부품을 공급하는 업체들은 그동안 원가절감 차원에서 부품값이 잔인할 정도로 깎였다며 불만이다. 딜러들도 전임 CEO가 직판딜러망 구축 등의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위협한데 대해 섭섭해 한다. 품질도 최악의 상태. 각종 조사결과는 미국 내 주요 자동차회사중 포드의 품질이 최하위임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파이어스톤 타이어 리콜은 21억달러에 달하는 비용은 물론 포드차를 불안한 차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오랜 베스트셀러인 F-150픽업시리즈와 익스플로러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대체차종이 나오지 못한 것도 문제다. 때문에 올 들어 전체 판매는 9% 감소했다. 주력시장인 북미지역에선 무려 15% 줄었다. 시장점유율이 22.8%로 1.5%포인트 떨어졌다. 이런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자산매각 종업원해고 경비삭감 등 구조조정은 구조조정대로 진행해야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44세의 젊은 경영자가 위기에 처한 세계적인 기업을 구해낼 수 있을까. 실무경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2살때인 79년 회사에 들어와 83년 MBA 공부를 위해 떠날 때까지 4년간 제조 판매 생산개발부문의 중간관리자로 일했다. MIT에서 MBA를 마친 뒤에는 회사의 가장 힘센 조직인 금융위원회를 5년간 운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포드자동차 스위스법인이 자신이 경영해본 가장 큰 규모였던 그에겐 아직 경험부족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물론 그는 당당하다. "포드는 한사람이 경영하기에는 너무 큰 회사"이므로 다른 경영자들과 상의하면서 경영하면 문제될게 없다는 판단이다. "회사의 성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우수한 인재들"이라는 그는 "최고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외부에 있다면 그를 데려올 것이고 내부에 있다면 그를 발탁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미 그는 CEO 취임과 동시에 2인자의 자리인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에 닉 쉴리 전 재규어부문 책임자(57), 금융부문을 관장하는 부회장에 웰스파고은행 회장 출신으로 월스트리트를 잘 아는 칼 리카르트(70)를 임명했다. 전임 CEO가 자신에게 직접 보고하는 16명의 임원들과 수직관계의 경영을 해 독재자라는 비난을 받았던 것을 의식, "이 두사람을 포함해 많은 직원들의 생각을 듣고 결정하는 합의방식의 열린 경영을 하겠다"고 약속한다. 회사 내부업무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관계가 많이 손상된 월스트리트 딜러 하청업체 고객들과의 관계를 복원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겠다고 말한다. 중장기적으로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회사를 말로만이 아닌 실질적인 환경친화적 회사로 만드는 것. 지난 2년간 회장역할을 맡으면서도 포드를 비롯 자동차산업이 대기의 이상변화를 가져오는 온실가스를 방출하는데 일조하는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그리고 청정대체에너지, 재활용자동차, 썩는 부품 등의 개발에 자동차산업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열변을 토한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1백년 넘게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가 최근 '원수' 사이가 되어버린 파이어스톤과의 적대감도 누그러뜨릴 것으로 보인다. 파이어스톤 타이어를 장착한 익스플로러 자동차의 사고책임을 놓고 의회청문회와 법정에서까지 맞서는 등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이 두 회사는 원래 사돈지간. 빌 포드 주니어의 어머니가 파이어스톤 집안 출신이다. 때문에 두 회사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해법이 제시될 전망이다. 그의 등장에 대해 일단은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디트로이트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딜러중 한명인 후트 맥러니는 "그는 품질이 왜 중요한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며 "앞으로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월스트리트의 애널리스트들도 조심스럽지만 낙관적이다. "경영능력은 검증되지 않았지만 포드가문에서 직접 경영한다는 것 자체가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킨다"(조 케세사 메릴린치 애널리스트)는 설명이다. 올 들어 32% 하락하는 등 최악으로 치닫던 주가도 그래서 최근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회사 안팎에선 그가 CEO를 3~4년 정도만 할 것으로 예상한다. '구원투수'의 임무만 끝나면 다른 회사들처럼 전문 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길 것이란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 ----------------------------------------------------------------- 1957년 디트로이트 태생 1979년 프린스턴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1984년 매사추세츠공과대학 MBA 1995년 포드자동차 이사회 금융위원회 위원장 1996년 프로풋볼팀 디트로이트라이언스 구단주 1997년 포드자동차 이사회 환경 및 공공정책위원회 위원장 1999년 포드자동차 회장 2001년10월 포드자동차 회장 겸 C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