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組暴경제'] (5) '私債의 덫'..急錢 빌려주고 高利 뜯어

여성 직장인 김모씨(21)가 연 1천%가 넘는 사채의 덫에 걸린 것은 지난 3월말. 컴퓨터 구입비와 이동전화 요금 등을 길거리에서 발급받은 신용카드로 긁은게 화근이었다. 카드 빚은 1백만원 남짓. 하지만 만기 내에 갚을 길이 없었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것을 두려워한 김씨가 생활정보지를 보고 찾아간 곳은 중곡동에 있는 사채업체. 급한 마음에 10일에 30%씩의 높은 이자가 적용되는 사채 1백10만원을 빌려 썼다. 선(先)이자로 30만원을 떼고 그가 손에 쥔 돈은 80만원. 사채업자들은 한장의 종이를 내밀며 서명을 강요했다. 돈을 못갚으면 불법체류자와 결혼하겠다는 내용의 '혼인서약서'였다. 처음 한달간 김씨는 착실히 이자를 갚아나갔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다니던 직장이 문을 닫았고 결국 연체가 시작됐다. 매일 20만원씩의 이자가 붙었다. 김씨의 빚이 5천9백만원으로 불어난 지난 8월초 사채업자들은 "불법체류자와 결혼시키든지 섬에 팔겠다"며 협박한 끝에 김씨 가족들로부터 2천5백50만원을 빼앗아 갔다. 급전에 쫓기는 서민들을 담보로 한 '사채 폭력'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수법도 잔혹해지고 있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전언이다. 올들어 사채업자에게 피해를 당한 사람은 경찰 집계만으로도 2만7천7백41명(6월말 기준). 전년 동기에 비해 2.2배나 급증했다. 외환위기 이후 신용불량자가 급증하면서 사채시장이 급팽창하자 조폭들이 앞다퉈 뛰어들면서 온갖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는게 경찰 분석이다. 성남의 사채업자 H씨는 "어떤 식으로든 조직폭력배를 끼지 않고는 영업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라며 "이전의 동네 구멍가게식 운영으로는 치열한 사채업체간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사채업계에서 두드러지는 '영업 전략'의 변화는 분업화로 요약된다. 전주(錢主)가 자금모집 대출영업 대출회수 등 모든 업무를 총괄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 사채업계는 전주.도매업자.소매업자.작업조 등으로 조직화되고 있다. 전주는 말 그대로 돈을 끌어모으는 사람. 유령회사를 설립해 '딱지 어음'을 발행하거나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한 뒤 이를 담보로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는 일명 '찍기'를 통해 돈을 끌어모은다. 도매업자는 자금회수 총책을, 소매업자는 대출영업을, 작업조는 채권 회수를 각각 책임진다. 각 팀은 철저한 '성과급제'를 바탕으로 운영된다. 채권회수 과정에서 구타 협박 납치 인신매매 등 온갖 잔혹한 폭력이 행사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대부분 조폭 출신인 작업조가 단순 청부에서 벗어나 아예 사채 사무실을 직접 경영하기도 한다. 명동에서만 13년간 사채업을 했다는 B씨는 "작업조 출신 사채업자들은 대출계약서 작성시 신체포기 각서, 백지수표 위임, 혼인서약서 등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중 성공한 일부는 벤처 열풍을 타고 벤처기업에 사채를 놓아 지분을 양도받거나 벤처기업 인수합병(M&A) 사업을 벌여 단기간에 수백억원대의 재력가가 된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 특별취재팀 =이학영 경제부 차장(팀장).김태철.김동민.조성근.최철규.송종현.이상열.오상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