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벤처사장이 살려낸 동부민요 .. (주)갑우정밀 박수관 대표 민요발표회

벤처기업 사장이 명맥이 끊긴 동부민요를 되살리는 뜻깊은 공연을 갖는다. 대구시 서구 상리동에 있는 ㈜갑우정밀 대표 박수관씨(47)가 오는 20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제1회 동부민요발표회를 연다. 박씨가 아마추어 소리꾼이 아니라 부전된 민요를 전승해 온 '숨은 명창'이라는 데 국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도와 남도지방 민요들은 명창들에 의해 전수돼 왔지만 함경 강원 경상북부 등 동부지방의 민요들은 일제와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맥이 거의 끊긴 상태여서 그의 소리가 갖는 가치는 큰 것으로 평가된다. ㈜갑우정밀은 컬러TV 전자관 과 컴퓨터모니터 제조기계를 생산하는 업체로 지난 96년 대한민국환경문화상을 받은 중견 벤처기업.박씨는 지난 18년간 이 회사 대표로 재직해 왔지만 그의 소리인생은 40년이나 된다. 그는 7세 때 소리에 첫 발을 디뎠고 12세 때부터 소리의 달인인 스승 '김노인'을 만나 전쟁가 백발가 등 수십곡의 동부민요를 배웠다. "스승님께서는 소리를 남들 앞에서 부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 오랫동안 소리공부를 해오다가 제 소리를 국내에선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는 90년대말 국내 주요 소리 경연대회들을 석권하면서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제1회 상주전국민요경창대회 명창부 대상을 비롯 남도민요 전국경창대회 대상,제7회 서울 전통공연예술경연대회 종합 대상 등을 수상했다. 러시아국립글링카음악원 명예음악 교수이기도 한 그는 지난해 로마공연에서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스승인 주제페 타데이로부터 "이렇게 훌륭한 소리는 구십 평생 처음"이란 찬사를 들었다. 최근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린 세계무역센터 테러 희생자 추모음악회에서 40여분이나 우리민요를 불러 갈채를 받았다. '창작국악의 거봉'황병기씨도 그의 소리를 들은 뒤 이번 공연에 특별출연을 수락했다. 박씨는 특히 '메나리조'를 제대로 전승받은 드문 소리꾼으로 평가받는다. '메나리조'는 함경 강원 경상도 등 동부지방의 민요와 무가에 사용되는 음계로 소리후반부를 감아주면서 서글픔과 애절함을 짙게 드리우는 창법이다. 그는 이날 무대에서 '전쟁가' '백발가' 등을 국내 처음으로 공식 발표한다. 3백여년전 함경도 지방에서 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전쟁가'는 가장을 전장에 떠나 보낸 가족의 비통함이 애절하게 드러난다. '백발가'도 기존 가사와 완전히 다르며 인생의 허무함이 통절하게 배어난다. 그는 "동부민요는 고음과 저음 중음이 한꺼번에 나오고 거미줄처럼 끊어질 듯 이어지는 게 묘미"라며 "소리를 하는 동안엔 세상에 더 바랄 게 없이 즐겁다"고 말했다. (02)745-1411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