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위에 교차시킨 '生死의 흔적'..日서활동 김창영씨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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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흔적을 담은 환영(illusion)의 모래'
일본에서 활동 중인 김창영씨(45)를 2년전 대서특필했던 요미우리신문은 그의 작품을 이렇게 평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자동차 바퀴자국이나 회오리 바람이 지나간 흔적을 그린 그림은 "진짜보다 더 진짜같다"는 느낌이 든다.
'모래그림'으로 잘 알려진 김씨가 오는 22일부터 서울 청담동 박영덕화랑에서 2년만에 국내 개인전을 갖는다.
캔버스나 나무패널 위에 모래를 바르고 그 위에 '흔적의 형상'을 붓으로 정밀하게 찍어낸 '샌드 플레이(Sand Play)'시리즈 30여점을 출품한다.
김씨는 1980년 중앙일보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후 도일(渡日),일본에서 20여년간 활동해 온 작가다.
1996년부터 시카고 쾰른 바젤 등 해외 아트페어에 정례적으로 참가해 우리나라와 일본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 99년에는 아랍에미레이트에서 열린 제4회 '샤자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도쿄 '우시고메-가구라자카'전철역의 한 벽면에 세로 2?,가로 10?에 이르는 벽화를 설치해 주목을 끌었다.
김씨는 캔버스 위에 모래를 엷게 바르고 그 위에 바퀴자국같은 흔적을 그려낸다.
얼핏보면 모래사장에 무슨 흔적같은 게 남은 현실의 한 장면같은데 가까이 가 보면 모래는 실제 모래지만 흔적은 붓으로 세밀하게 그린 것이다.
흔히 '눈속임 기법'으로 불리는 정밀사기법(Trompe-l'oeil)을 이용,'허상의 환영'을 통해 실체와 가상의 세계를 미묘하게 교차시킨 작품이다.
그는 하루 8시간 꼬박 작업에 매달려 그릴 수 있는 화면이 손바닥만하다고 한다.
대작 하나 그리는 데 보통 3개월 정도 걸린다.
김씨가 모래를 재료로 작업하기 시작한 것은 20여년전.부산 바닷가에서 살고 있을 때부터다.
"무수한 발자국이 밤과 아침을 경계로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생성과 사라짐에 대한 의문을 캔버스 위에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한 가지 재료만 그토록 오랫동안 매달리면 싫증나지 않느냐는 질문에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모래에 대한 매력이 깊어진다"며 "앞으로도 모래작업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일본 모래가 노란 색감이 안 나와 우리나라에서 수입해 쓴다고 한다.
초기 일본에 정착할 3∼4년간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혹독한 생활고에 허덕였다는 김씨는 데이비드 해크니 등과 함께 도쿄 니시무라화랑에 소속될 정도로 이제는 자리를 잡았다.
그림을 그릴 시간이 부족해 밀려오는 작품 주문을 거절하는 실정이다.
내년 상반기에 미국 마이애미에 있는 코메노즈화랑에서 개인전을 연다.
12월1일까지.(02)544-8481∼2
이성구 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