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이공계 가서 인문 역량을 .. 金鎭愛 <건축가>

김진애 매년 이맘 때면 온 나라가 입시로 들끓는다. 올해는 예상외의 수능 난이도 때문에 더욱 들끓는 듯 싶다. 안그래도 각종 교육제도 변화에 대한 추진과 반대가 어지러운 판에 더욱 산란하게 만든다. 교육을 둘러싼 온갖 동요와 분란을 보면 허망하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떻게 원하는 대학에 가든,지금 젊은이들의 미래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찾는 것,일하는 것,일감을 유지하는 것,일감을 창조하는 것,사는 것,노는 것 등 모든 행위가 더욱 어려워질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옵션은 무한하게 많아지지만 선택은 훨씬 더 어려워진다. 사람의 물리적 수명은 점점 길어지고,직능의 수명은 점점 짧아지는 세상이 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젊은이들이 스스로 갖추는데 우리의 교육이 제대로 중심을 잡고 있는지,입시와 무관하게 걱정이 된다. 특히 걱정되는 것이 두가지가 있다. 첫째,이공계 진출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20여년 전 과반수가 되던 것이 지금은 29%에 불과하단다. 수학이나 과학이 어려워서 싫고,기술자라는 것이 매력 없어 보이고,다른 재미있는 것들이 훨씬 많아서 피한다는 현상이다. 이공계 진출 학생이 줄어드는 것은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미래기반 역량을 깎아먹을 위험성이 농후하다. 물론 아주 뛰어난 몇%가 탁월한 역량으로 기술 개발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지도 모르지만,'뛰어난 사람'은 '튼튼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 때 나타나는 것이다. '탁월한 기술 혁신'은 돌연변이가 아니라 꾸준한 진화 속에서 언제 나타날 지 모르는 것이다. 더구나 인간의 그 어떤 활동도 사회의 그 어떤 운영도 '기술'없이는 가능치 않다. '만들 수 있는 기술적 역량'이 일단 갖추어져야 무엇을 창조해내는 기량도 높아진다. 하물며 영화도 기술이고,음악도 기술인 세상이다. 둘째,젊은이들이 '노는 법,사람과 관계 맺는 법,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을 익히지 못한채 '(공부)전문가'가 되는 풍토다. 그런데 과장하자면,공부 전문가는 학교에서야 날릴지 모르지만 실제 사회에서는 큰 효용성이 없을 가능성이 많다.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을,왜,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잘 포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작금의 변화하는 사회는'사농공상(士農工商)'을 나눌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교양인 지식인 예술인 기술인'을 나눌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한 사람이 그 모든 역할을 이모저모 녹여야 그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시대다. 이를테면,'상인'이라면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왜 사회가 이것을 필요로 하는지,어떤 기술이 필요한지,어떤 디자인을 해야 어필하는지,어떻게 마케팅을 해야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지 생산적 창조 감각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종종 권한다. "이공계로 진출해서 인문적 역량을 키우고 예술적 감각을 스스로 즐기는 사람이 되어라" 물론 꼭 이공계로 가라는 뜻은 아니다. 인문 분야로 진출하더라도 기술 마인드와 예술 감각을 익히고,예술 분야로 진출하더라도 기술 감각과 인문 역량을 키우라는 뜻이다. 개인의 성장과 우리 사회의 성장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다만,이공계로 진출하는 것을 싫다고 보지 말라. 수학이나 과학이 학교 공부에서 지치게 하듯 그렇게 재미없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더욱 요긴하게 필요하다. 그리고 실제 일하는 기회를 찾기에도 훨씬 더 이로울 것이다"하고 은근히 권한다. 훨씬 더 어려울 미래를 살아갈 젊은이들은 기술·인문·예술을 나누지 말고,특히 공부와 놀이와 사람살이를 나누지 않는 태도를 익혀야 할 것이다. 이런 젊은이가 일을 제대로 할 뿐만 아니라 살벌한 경쟁 속에서 그 어떤 성과가 있든 자신의 정신적·심리적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랄 것이다. '전인(全人)적 교육'이라는 말보다,'창인(創人)적 교육'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자신이라는 인간과 자신의 일의 의미를 끊임없이 창조하면서 스스로 살아나갈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할 터이다. jinaikim@www.seoulforu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