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9일자) 추곡수매가 인하는 불가피한 선택

내년 추곡수매가를 올해보다 4∼5% 내리라는 양곡유통위원회 건의는 한마디로 말해서 농업정책을 전면적으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농민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리라는 것은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정부로서도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뉴라운드 출범 합의에 따라 농산물시장 개방확대는 이제 기정사실화 됐다. 쌀만 하더라도 오는 2005년부터는 현재 국내소비량의 4%인 의무수입량을 대폭 확대하거나 관세이외의 수입장벽을 모두 헐어야 한다. 지금도 매년 7백60억원씩 줄여가고 있는 추곡수매금액을 더 큰 폭으로 추가 감축,결국 정부수매가 사실상 없어지게 된다. 현재 국내 쌀값이 국제시세보다 5.8∼9.2배 비싸다는 점을 감안하면 관세율을 통한 쌀생산 농가 보호정책의 한계는 자명하다. 농산물관세는 뉴라운드 개시 10년이내에 대폭 감축해야 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해마다 재고가 누적되고 있는 쌀생산을 줄이고 고(高)품질을 개발토록 하는 등으로 방향을 트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양곡유통위원회의 건의도 바로 그런 인식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1천만섬에 육박하고 있는 쌀재고가 올해 풍작에 따라 내년에는 1천3백만섬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점만 감안하더라도 수매량 감축은 어쩔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농민들이 더 어려워지리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휴경농가에 대한 논농사 직불제 보조금 단가를 올리는 등 보완정책이 뒤따르겠지만 그것이 농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 또한 점치기 어렵지 않다. 쌀생산을 줄이되 그 기반은 유지해야 한다고 볼 때 직불제 보조금을 올려줄 수 있는 한계는 그렇게 크지 않다. 사상최초의 추곡수매가 4∼5% 인하 건의가 실제로 어떻게 귀결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농민들의 집단행동이 예상되는 데다 내년이 선거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특히 그러하다. 국회 심의과정도 남아있는 만큼 진통은 적지않을 것이고,그것이 또하나의 갈등증폭 요인이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따지고 보면 이 문제야말로 대안없이 논란을 벌일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올해는 넘어가고 보자는 식으로 미루기만 하는것도 책임있는 자세라고 하기 어려운 것 또한 물론이다. 농산물시장 개방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여건에서 농업정책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집단행동이나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