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쌀과 한국영화 .. 崔炳鎰 <이화여대 경제학 교수>

세계무역기구(WTO) 뉴라운드가 드디어 출범하게 됐다. 농업과 서비스시장을 개방하기 시작한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이후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 협상,그리고 1997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상을 통해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의 추가적인 개방,적대적 인수합병 허용,수입선다변화 해제 등 광범위하고 파격적인 자유화 조치를 단행했다. 그 결과 현재 한국의 실질적인 무역장벽은 농산물분야와 서비스분야 일부에 남아 있을 뿐 외형상으로는 상당히 개방된 모습을 갖고 있다. 뉴라운드 협상 과정에선 농산물분야의 높은 관세율 구조,쌀에 대한 관세화 유예,시청각서비스,교육·법률서비스 등 서비스분야에 가해지는 무역 및 투자제한 조치를 폐지하라는 외국의 개방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무역 규모가 국민총생산의 70%가 넘는 한국으로서는 세계경제가 개방적인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는 빗장을 걸고 외국은 개방체제를 유지하기를 바라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정치적 현실과 실질적인 경쟁을 통해 생산성과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높여야 하는 경제적 당위성에 비추어 한국이 개방적 정책기조를 유지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다. 현재 개방 압력이 가해지고 있는 분야는 반개방세력들이 가장 강력히 결속돼 있는 분야다. 쌀이 그렇고 스크린쿼터가 쟁점인 영화산업이 그렇다.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협상 과정에서 이미 우리 농민들은 결속력을 과시한 바 있다. 스크린쿼터는 미국과의 투자협정 체결 협상을 좌초시켰다. 이 과정에서 정책 조정능력의 한계를 노출한 한국정부가 뉴라운드 협상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것은 당연하다. 쌀과 영화산업은 한국의 개방정책과 보호주의정책간 갈등의 정점에 서 있다. 경제적인 효율성 논박만으로 판가름한다면 쌀과 영화에 대한 논쟁은 간단히 끝낼 수 있다. 한국정서에 따르면,쌀과 영화는 단순한 경제재가 아닌 문화적인 상징이다. 때문에 한국쌀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는 한국영화를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와 맞닿아 있다. 수입쌀이 들어오면 한국쌀이 밀려난다는 우려와 스크린쿼터가 폐지되면 한국영화가 설 자리를 잃는다는 우려는 우리 고유문화가 외국 이질문화에 밀려나고 점령당한다는 문화 종속론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우리의 농업기반이 파괴되기를 바라는 국민은 한 사람도 없다.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보전하자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도 없다. 다만 쌀에 대한 관세화를 유지하는 것이 과연 농업기반을 확보하는 최선의 정책인지,현재와 같은 방식의 스크린쿼터를 유지하는 것이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위해 최선의 정책인지는 따져 보아야 할 일이다. 사람들은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돼 있다. 쌀값이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이후에도 외국쌀과의 가격차를 줄이기는커녕 더 비싸게 된 이면에는 정부의 추곡수매가 인상정책과 쌀 증산정책이 있다. 농민을 표로만 계산하는 정치적 논리에 포획된 무책임한 정책은 고통을 수반하는 구조조정을 외면해 버렸다. 한국영화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고 한국영화에 관객이 계속 몰리는 현상은 영화산업의 수익성이 높아지고 관객이 원하는 영화를 만들고 홍보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지,국산영화의 의무상영일수를 규정한 스크린쿼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스크린쿼터가 사라진다면 작품성을 강조하는 소규모 자본의 한국영화가 가장 큰 피해를 본다는 주장 역시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이미 이들은 홍보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설 자리를 상실하고 있다. 진정으로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염려한다면,이들의 존립기반을 확보하는 실효성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스크린쿼터가 그 해답이 아닐 수도 있다. 자기 주장과 다르다고 상대방을 비방하고 대화와 토론을 거부한다면 갈등은 증폭되고 아집과 독선이 난무하게 된다. 합리적인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없는 사회는 또 다른 폭력을 방치하는 사회다. 21세기 최초의 다자간 통상협상은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기 위해 우리가 풀어야 할 첫번째 과제다. byc@ewha.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