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파워] 3부 : (3) '눈길끄는 협상술'..상황변화 따라 다양

중국 비즈니스 경력 7년째에 접어들고 있는 한 대기업 베이징 지사장 K씨. 그는 중국인들의 협상술에 혀를 내두른다. "수 백차례 담판(談判)을 벌여 왔지만 그들의 협상술은 따라잡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만큼 중국인들의 협상 기법은 상황에 따라 끝없이 변한다는 얘기다. 상사원들이 자주 부딪치는 중국인들의 협상기법을 보자.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게 '성동격서(聲東擊西)'형이다. 주변 경쟁업체와 협상을 벌이는 척 꾸며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한다. 제지업체인 H사 베이징지사는 최근 기존 거래업체로부터 수입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 바이어는 수입하겠다는 말만 해놓고 협상은 경쟁관계에 있는 S사와 시작했다. S사는 '새로 거래를 틀테니 가격을 깎아달라'는 중국 바이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신규고객 확보 차원에서다. 그렇다고 중국 바이어가 S사로부터 물건을 수입한 것은 아니다. 그는 그 가격을 갖고 H사로 가 "S사에서 이만큼 깎아 줬는데 어쩌겠느냐"고 으름장을 놓았다. H사는 기존 거래가격을 낮춰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신이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판단되면 '전략적 만만디(慢慢的.느리다는 뜻)'형 협상술을 구사한다. 고의로 협상을 지연시켜 상대방의 진을 빼는 작전이다. 2년 전 발생한 한.중 마늘분쟁 협상이 한 예다. 당시 협상에 관여한 한 상사원은 중국측의 지연작전에 치를 떨었다. 중국측은 어렵게 얻어낸 협상 결과를 뒤집기 일쑤였다. 다 됐다 싶으면 새로운 조건을 내밀기도 했다. 협상중 파트너가 바뀌기도 했다. 국내 언론의 질타를 받고 시간에 쫓기던 우리나라 협상팀의 약점을 노린 것으로 해석된다. 자신의 결점을 감추기 위해 허세를 동원하는 '허장성세(虛張聲勢)'형도 있다. 투자협상에서 자주 나타난다. 산시(陝西)성 타이위안(太原)에 합작 공장을 세웠던 P사가 이 전략에 말려든 케이스. 이 회사의 파트너는 투자협상을 벌이면서 산시성 성장, 성 서기, 타이위안 시장 등 거물들을 모두 끌어들였다. 성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음을 암시한 것.그러나 협상이 타결되고,투자금이 입금된 후 성정부 관계자들은 만날 수조차 없었다. 성정부에서 판로를 열어줄 거라는 기대는 포기해야 했다. P사는 약 1천만달러에 달하는 투자금만 몽땅 날렸다. '애매모호(曖昧模糊)' 협상술도 자주 나타난다. 일단 포괄적으로 협상을 타결해 놓고 구체적인 사안은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가는 경우다. 상황 변화에 따라 협상 자체를 파기하기도 한다. 대우는 이동통신 사업자인 중국연통과 4년 전 저장(浙江)성 이동통신사업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은 그러나 사업이 궤도에 오른 작년 하반기 대우에 사업에서 손을 떼도록 압력을 가했다. 중국은 당시에는 문제되지 않았던 '중중와이(中中外.중국업체 2개와 외국업체 1개 합작) 방식'을 불법이라며 협상파기를 선언했다. 천(千)의 얼굴을 가진 중국인들의 협상기법. 광대한 시장과 맞물려 빛을 발하고 있는 이 협상술이 중국 상술의 또 다른 경쟁력이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