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IT 수출 종합상사'論 .. 최완수 < IT 부장>

서울이 세계 대도시중 유일하게 시내버스요금을 전자화폐로 지불하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또 서울에 있는 호텔이 세계에서 가장 편리한 통신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 그뿐인가. 성남시는 내년 초부터 세계최초로 휴대폰 하나로 전 시내에서 각종 공과금이나 일반 상거래의 지불결제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한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성남시는 세계유일의 명실상부한 디지털도시가 될 것이다. 사회가 온통 짜증나고 우울하고 어지러운 세태를 보이고 있지만 우리의 IT(정보기술) 환경은 어느덧 세계 첨단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전국 어디서나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PC방이 있다는 걸 외국인들은 얼마나 부러워하는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테스트 베드(Test Bed·첨단기술을 시험할 수 있는 장소)' '월드와이드 프런트 레벨(Worldwide Front Level·세계적인 첨단수준)'이라고 부를 정도다. 이처럼 우리의 IT인프라가 선진국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밑거름이 되는 IT기업들은 정작 생사의 기로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특히 벤처의 경우 해당분야에서 세계적 기술수준을 갖고 있어도 허덕이는 기업이 적지 않다. 그 이유 중 가장 많이 거론되는 점은 국내에서의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는 것이다. 시장은 좁은데 경쟁기업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다. 경쟁이 심하다보니 덤핑이 판치고 기술력 있는 기업들마저 어려움에 봉착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결국 시장이 좁아 일어나는 현상이다. 자연스럽게 해결책은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 IT벤처의 경우 해외는 물론이거니와 국내에서조차 세일즈 마케팅 능력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창업자들이 대부분 기술인력이다 보니 마케팅에는 약하다. 정부가 앞으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술개발 지원도 좋지만 개발한 기술을 해외에 팔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지난 60,70년대 변변한 기술 하나 없이 수출을 했는데 지금은 기술을 갖고 있으면서도 외국에 팔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그런 점에서 IT종합상사 같은 제도를 한번 고려해 봤으면 한다. 과거 종합상사가 부정적인 면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해외에 물건을 팔 수 있었던 데는 종합상사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산업화단계 초기에 종합상사가 담당했던 역할이 정보화단계 초기인 지금도 유효하다는 생각이다. 종합상사라는 용어가 거북스럽다면 'IT수출 전문회사'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현 단계에선 IT지식과 세일즈 능력을 겸비한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벤처=기술'이라는 등식은 이제 '벤처=기술+마케팅'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또 국가적인 '세일즈 인적 자본(Sales Human Capital)의 보존'이란 차원에서도 검토해볼 만하다.최근 들어 종합상사의 기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우수한 세일즈인력이 명퇴 등으로 퇴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또 대기업의 우수한 수출전사(戰士)들이 구조조정 등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쪽에선 이같은 인재들이 사장되고 있고,한쪽에선 필요로 하는 '사회적 불일치'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에선 이런 불균형이 헤드헌터 등 시장의 힘에 의해 해결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벤처기업의 영세성,헤드헌터시장의 미발달 등으로 시장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시장의 실패가 일어나거나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곳에 정부의 할 일은 있다. cws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