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21세기 유엔의 새로운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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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는 오늘도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고 있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세계 다른 모든 곳의 어머니가 그렇듯이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며 달래고 돌볼 것이다.
이처럼 인간 본성에서 나오는 기본적인 행동에 있어서는 인류에게 단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아프간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인류가 이룩한 번영에서 한 세기나 뒤떨어진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비인간적인 상태하에서의 삶을 의미한다.
이는 마치 두 혹성에서 벌어지는 별개의 이야기인 것처럼 보인다.
현재 아무도 부유층과 빈곤층의 단절을 충분히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또 이같은 단절로 인해 빈곤층이 치뤄야할 대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하지만 그 대가는 그들만 홀로 치뤄야할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가 떠맡게 될 문제다.
오늘날 실제 장벽은 국가 사이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장벽은 권력층과 비권력층,자유인과 얽매인 사람,특권층과 굴욕받는 계층 사이에 존재한다.
하지만 어떤 장벽도 세계 한 지역에서 자행되는 인권유린행위를 다른 지역의 국가안보 위기와 분리시킬 수 없다.
자연의 세계는 너무 작고 상호의존적이어서 아마존 밀림에 있는 나비의 날개짓이 지구반대편에 사나운 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 법칙은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로 알려져 있다.
인류는 인간활동의 영역에서도 고유한 '나비효과'가 존재함을 깨달아야 한다.
인류는 화염의 문을 거쳐 제3의 천년기로 들어서고 있다.
9·11테러 이후 좀 더 깊은 성찰을 진행한다면 우리는 인류가 불가분의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새로운 위협은 인종 국가 종교 사이의 구분을 두지 않는다.
새로운 위험은 재산과 신분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다가 오고 있다.
20세기는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최악의 기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 기간동안 수많은 분쟁과 상상할 수 없는 범죄들이 자행돼 왔다.
세계 각국 지도자들은 이에 대응키 위해 20세기 중반에 서로 단결해 유엔을 탄생시켰다.
각국은 유엔을 통해 법의 지배를 강화하고 빈곤층을 도우며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 힘써 왔다.
인류는 20세기로부터 정치적인 힘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의 힘까지 물려받았다.
그것들은 인류가 사용할 의지만 있다면 빈곤,무지,질병을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21세기 유엔의 새로운 사명은 인종,종교 등과 관계없이 모든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는 인류에게 국가의 관점을 떠나 현상을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같은 행동의 실천은 한명의 아프간 아이를 보는 시각을 전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하나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곧 인류 자체를 구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류는 깨달아야 한다.
이같은 관점에서 다음 세기의 유엔의 역할로 세가지 우선과제를 꼽을 수 있다.
그것은 빈곤퇴치,분쟁방지,민주주의 촉진이다.
빈곤이 없는 세상에서만 사람은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인권이 보장되는 곳에서만 서로간의 차이가 정치적으로 용납될 수 있다.
또 민주적인 환경 하에서만 개인의 자기표현이 보장되고 결사의 자유가 유지될 수 있다.
글로벌 시대의 도전들은 글로벌 수준에서의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한 국가가 법을 무시하고 자국민들의 인권을 짓밟는다면 그것은 곧 이웃국가와 사실상 전세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오늘날 인류는 더 나은 통치를 필요로 하고 있다.
정당성을 갖춘 민주적인 통치는 각 개인에게 번영을 가져다주고 각 국가가 번성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줄 것이다.
정리=송대섭 기자 dss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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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최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시상식에서 행한 연설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