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터뷰] 기 소르망 <문화비평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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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대표적 석학 기 소르망이 신간 '간디가 온다' 홍보차 한국을 찾았다.
자주 오는 한국이지만 올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고 말하는 그를 17일 서울시내 한 호텔의 한국식당에서 만났다.
기 소르망은 지난 9.11 테러사태를 '문명의 충돌'로 풀이하는 새뮤얼 헌팅턴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세계 10억의 회교도를 서구문화와 대결하는 구조로 보는 논리는 아주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같은 서구의 왜곡된 시각은 도리어 문화 충돌을 조장한다고 경고했다.
또 최근 브리지트 바르도의 한국 개고기 식습관 비난과 관련, 음식은 언어와 함께 한 국가의 문화를 규정하는 요소로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 대담 = 강혜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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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11일 미국에서 발생한 테러사태 이후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소르망 교수께서도 이를 문명의 충돌로 보십니까.
"새뮤얼 헌팅턴의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그는 이슬람권을 형성하는 각국 개개인의 문화적 특성과 차이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도 없이 회교도를 서구 기독교와 대립하는 하나의 거대 조직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모로코에서부터 아시아의 인도네시아에까지 이르는 10억 회교도는 하나가 아닙니다.
같은 회교도인이라 해도 아랍인과 동유럽인, 아시아인의 경우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거대한 이슬람문화권을 동일한 집단으로 규정해 문명의 충돌을 일으킬 위협으로 간주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입니다.
이같은 왜곡된 시각은 서구에 이슬람을 위협적이자 불관용적이라는 신화를 심어줄 뿐 아니라 회교도들로 하여금 서구사회가 자신들의 신앙 및 문화와 공존할 수 없는 것으로 믿게 하며 나아가 회교원리주의자들에게 대립의 구실을 제공할 것입니다.
유럽의 대도시 근교에서 발생하는 폭력이나 소요사태를 보십시오.
이같은 사태의 주원인은 실업이라는 사회적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회교도 이주민 탓으로 돌리지 않습니까"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미국 승리로 일단락되긴 했지만 다른 종교전쟁으로 확대될 위험은 없습니까.
"9.11 사태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대규모 종교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회교원리주의자들의 9.11 테러공격은 서양에 대한 이슬람의 항거가 아닙니다.
지난 20년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전쟁을 보면 이는 이슬람간의 갈등이었지 이슬람과 기독교 간의 대립이 아닙니다.
이란-이라크전을 비롯해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략으로 시작된 걸프전 등은 이슬람 내의 정치적 갈등입니다.
빈 라덴의 목표는 이슬람 내에서 권력을 장악해 사우디아라비아의 호메이니가 되고 싶은 것이지 미국을 정복하자든가 세계를 이슬람화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테러 발생 직후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회교도 국민들이 빈 라덴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인 것은 그들이 현 집권 체제에 대해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슬람국가들이 풍부한 천연자원으로 큰 수입은 있으나 그 부가 전국민에게 골고루 분배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빈곤함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민들은 자국 정부와 체제에 대해 불만이 많습니다.
서방국가들이 이들을 지배하는 독재 정치가들을 지원한다는 것 역시 큰 불만입니다.
일부 진보주의 이슬람정부들은 회교원리주의의 세계적 파급을 막아주겠다는 구실로 서방 선진국들의 암묵적인 지원을 받으며 독재권력 유지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와함께 소수의 이슬람주의자들 역시 그들의 생존을 위해 반이슬람 주의자들을 필요로 합니다.
이를 빈 라덴과 같은 원리주의자들이 이용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들의 반미 기치는 대의명분인 것입니다.
회교원리주의자들의 위협은 과대 평가돼 있습니다"
-이같은 분쟁과 대립의 시기에는 비폭력 정신으로 대표되는 간디의 관용주의가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간디의 정신은 요즘같이 충돌과 폭력으로 가득한 세상에 인류가 필요로 하는 사상입니다.
오직 내가 믿는 것만이 진리라는 일방적 사고가 인류를 상극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간디의 관용정신은 문화충돌로 이어지는 인류의 재난에 대한 완충작용과 해결책을 제시할 것입니다.
간디의 비폭력 항거는 아직도 유효합니다.
넬슨 만델라는 자신을 간디의 비폭력 항거정신을 실천한 제자라고 말합니다.
남아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붕괴는 관용주의의 승리입니다.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 여사 역시 간디의 비폭력 항거를 실천하는 투쟁가입니다.
나는 아웅산 수지의 투쟁이 승리할 것으로 믿습니다.
관용정신은 수동적 투쟁이 아니라 저항정신의 원동력이 됩니다.
하지만 비폭력 투쟁이 승리하기 위해선 양자간의 공통적 도덕성을 전제로 합니다.
간디조차 유태인들에게 나치에대항하지 말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나치는 이같은 도덕성이 결여된 집단이었으므로 비폭력 투쟁이 먹혀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 나온 신간에서 존엄성의 경제를 역설했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과거 사회주의국가의 경제 모델이었던 국가주도 계획경제는 실패했습니다.
그렇다고 자유주의가 무조건 약자의 권리와 부를 가져다 주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강자에게 특권을 부여한 측면도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개방 자유주의가 어디에서나 효율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란 걸 깨달았습니다.
존엄성의 경제란 경제에 과학의 발전과 도덕적 차원을 부가하자는 것입니다.
즉 경제에 있어서도 이윤추구라는 목적 이외에 수단의 개념을 도입한 것으로 경제발전의 목적이 국가의 힘 강화가 아니라 개인의 존엄성을 고양하는데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존엄성의 경제란 인간 중심의 인권 경제론으로 경제개발의 과정과 목표가 단기적 이익 추구보다는 장기적인 풍요로움이어야 합니다"
-최근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한국 개고기 식습관에 대해 또다시 공개적으로 비난했습니다.
한 국가의 식습관에 대해 뭘 먹어라 먹지 말라 하는 것은 주권국가에 대한 간섭 아닙니까.
"음식과 언어는 한 국가의 문화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기본적 요소입니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이렇다 저렇다 할 게 아니라 인정해야 합니다.
바르도의 이같은 태도는 과거 서구의 식민지 시대적 발상입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서유럽인들은 자신들과 같은 언어 음식 문화를 공유하지 않는 국가나 집단을 야만인처럼 취급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이같은 사고는 통하지도 않을뿐더러 잘못된 것입니다.
오히려 이와는 반대로 상대방의 다른 점을 존중하고 우수성은 받아들이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나는 한국인들이 바르도의 발언에 크게 분노하거나 과잉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이는 프랑스의 일반적 여론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보다 동물의 권리를 더 중요시하는 비정상적 동물애호주의자 바르도의 개인적 문제일 뿐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이 문제와 관련해 자신의 고유한 음식문화가 왜 비난의 대상이 되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개고기 식습관이 문제가 없지는 않다는 말입니까.
"그게 아닙니다.
중국이나 일본이었다면 그냥 넘어갈 사안이 왜 한국에만 문제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즉 이는 한국의 국가 이미지가 실제 가치보다 과소평가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유럽인들의 동양에 대한 무관심과 왜곡된 시각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자기 이미지 홍보는 자신이 먼저 나서야 합니다.
한국은 지난 88년 올림픽 이후 경제적으로 성공한 현대국가란 이미지 홍보에만 신경을 썼지 문화적 우수성을 알리는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바르도의 주장은 인정할 수 없는 그릇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한 어리석은 사람의 잘못된 생각에 분개하기 보다는 한국의 우수한 예술과 미적 가치를 효과적으로 홍보해 앞으로는 그 누구도 한국문화에 대해 간섭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진=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