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바꿔야 '경제'가 산다] 1부 : (6) '뿌리깊은 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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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중국과 마늘분쟁이 터졌을때 정부 일각에서 '해괴한' 아이디어가 등장했다.
대(對)중국 수출로 재미를 본 휴대폰, 폴리에틸렌 업계가 중국산 마늘을 직접 수입해 달라는 것.
작년에도 마늘분쟁 여파로 수출피해를 봤던 이들 업계는 산자부와의 간담회에서 "정부가 해결할 문제를 왜 민간기업에 떠넘기느냐"며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결국 없던 일이 됐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과 자동차 통상마찰이 벌어졌을 때 진념 부총리는 "현대자동차의 미국차 수입대행"이라는 설익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와 관련, 관계부처 회의가 소집됐지만 공무원들조차 "어떻게 그런 발상이 나오느냐"며 냉소(冷笑)적이어서 이 역시 유야무야됐다.
이런 해프닝의 이면에는 실무부처들과 통상조직간의 뿌리 깊은 알력이 숨어 있다.
현 정부는 통상기능을 통합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를 의욕적으로 신설했다.
그러나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올들어 꽁치 마늘 명태 자동차 철강 등 통상마찰마다 백전백패였다.
"광(光) 나는 일이면 서로 '내 것'이라고 다투고 책임추궁이 따를 일에선 뒤로 빠지는게 공무원들의 생리다"(종합상사 관계자)
요즘 각광받는 IT(정보기술) 분야에서 부처들간의 '내 땅' 싸움이 그 예다.
캐릭터산업협회는 산자부, 캐릭터문화협회는 문화부 소관이다.
음성인식협의회는 정통부, 음성정보기술협회는 산자부에 각각 등록돼 있다.
게임분야에선 한술 더 떠 이름도 비슷비슷한 게임기술개발센터(정통부) 게임기술개발지원센터(산자부) 게임종합지원센터(문화부)가 버젓이 존재한다.
심지어 가정용게임과 아케이드게임(오락실용)은 산자부가, 온라인PC용 게임은 정통부가, 게임 콘텐츠는 문화부가 각각 맡도록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때문에 아케이드게임을 오락실이 아닌 곳에도 설치(싱글 로케이션)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계획에 따라 게임기판 등을 대량생산한 업체들은 문화부의 실외 설치 불가 방침에 막혀 자금난을 겪고 있다.
이쯤 되면 IT정책은 산으로 갈 판이고 애꿎은 IT업계만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이 부처, 저 부처 불려다니노라면 IT산업 육성도 싫고 차라리 그냥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IT업체 대표)
올들어 정부와 재계에 가장 뜨거운 논란을 몰고온 대기업 출자총액한도 완화문제는 정책 알력의 또다른 사례.
경제부총리가 앉아 있는 재경부가 공정위를 설득하느라 수개월을 소모했다.
그 결과 재계와 시민단체 모두가 반발하는 기묘한 타협안이 나왔다.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은 "정부의 정책 결정이 이렇게 느려서는 중국에 따라잡힐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부처간 정책 알력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여야간 타협으로 누더기가 된 현행 정부조직법 자체가 알력을 빚어낼 소지를 담고 있어 그렇다.
금융정책 주도권을 둘러싼 재경부-금감위의 갈등, IT에 대한 산자부-정통부-과기부-문화부-교육부의 나눠먹기식 영역조정 등 공무원들의 영역다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또 정치인과 고위관료들은 각종 연(緣)으로 연결돼 있다.
관료들은 민원해결로, 정치인은 인사때 '줄'로서 상부상조한다.
정부의 정책 결정시 최우선 고려사항이 '국민'인지, 공무원들의 '권한'인지 아리송해진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