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大家] '에토레 부가티' .. 자동차를 예술로 승화

20세기초 롤스로이스와 함께 세계 최고급차의 대명사로 굴림했던 부가티.말발굽 모양의 아름다운 라디에이터 그릴과 무수한 고성능 경주용차들로 자동차 역사에 전설적인 브랜드로 남아있는 부가티는 탁월한 예술성을 지닌 천재 엔지니어 에토레 부가티(Ettore Bugatti)에 의해 탄생됐다. 그는 1881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친 카르르 부가티 역시 회화 및 가구 건축에도 조예가 깊었던 예술가였다. 어려서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던 에토레 부가티는 여러 자동차 회사에서 자동차 디자인과 제작기술을 익혔다. 17세가 되던 1898년 그는 최초로 4륜 자동차를 만들었으며 이는 후에 부가티 최초의 모델이란 의미로 "타입(Type)1"이라 불리게 된다. 1901년 밀라노 오토쇼에서 그는 두 번째 모델인 "타입 2"를 선보였으며 이 모델은 대상과 프랑스 모터클럽의 명예상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부가티는 1902년 독일로 가서 오스트리아의 디이트리히(Dietrich) 자동차 회사와 계약하고 디히트리히-부가티란 이름으로 약 1백여대의 차를 생산하게 된다. 부가티는 1909년이 되어서야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몰스하임 지역에 부가티 자동차회사를 설립했다. 이때부터 모든 모델에 부가티란 이름이 붙게 됐다. 그는 당시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앞선 디자인으로 고성능 소형 스포츠카를 만들어 냈으며 그가 만든 차는 1910년 파리 모터쇼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때 부가티는 "지나치게 아름답다거나 너무 비싸다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Nothing is too beautiful, nothing is too expensive)"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로부터 30년이 넘도록 그는 소형 경주용 자동차에서 럭셔리 리무진과 대형 버스까지 다양한 자동차를 디자인하고 생산했으며 엔진,기계 장비 등 20세기 산업디자인에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인류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차 "르와이알" 등 숱한 명차들을 남겼다. 또한 그가 처음 사용한 말발굽 형태의 라디에이터 그릴은 부가티의 상징이 됐다. 그러나 경제공황이라는 커다란 벽에 부딪힌 부가티는 1939년에 일어난 제2차 세계대전으로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에토레 부가티는 전쟁 직후인 1947년 숨을 거둔다. 경제적인 기반과 에토레까지 잃어버린 부가티는 결국 60년대에 이르러 문을 닫고 만다. 이후 부가티 마니아였던 이태리 사업가 로마노 아르티올리(Romano Artioli)가 80년대 후반부터 부가티 재건 작업에 들어가 87년 부가티 아우토모빌리를 세웠다. 그러나 이 회사도 경영난에 빠져 결국 96년에 또다시 문을 닫고 만다. 1998년 폴크스바겐의 피에히 회장이 부가티의 명성을 되살리기 위해 부가티 브랜드를 매입하게 된다. 피에히 회장은 이미 여러 대의 컨셉트카를 만들어 선보였으며 세계 최초로 18기통 엔진의 초고급 승용차를 개발하는 등 화려한 재기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손을래